원문 출처 : http://ddanzi.com/news/5628.html

1998.8.17.월.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박찬호와 박세리 이전에 우리나라가 조또 어디 쳐박혀 있는지 세계가 관심도 없던 시절 세계최정상 스포츠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최초의 한국인...

바로 차범근이다.

그는 79년부터 89년까지  당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였던 독일 분레스리가에서 308게임의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과 98골의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세계최고 스타들이 모두 세리에 A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최고의 리그는 분데스리가였다.


그의 독일 무대 첫골은 세번째 경기만에 나왔고 그 골은 독일 키커지가 선정하는 골든볼로 선정되어 그 주간내내 독일 TV를 장식했다. 데뷔 첫 해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 틈에서 바로 득점 7위에 올라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 분데스리가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88년에는 UEFA컵 결승 2차전서 극적인 3번째 골을 성공시켜 팀에 첫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이를 기념, 명문 레버쿠젠 클럽은 당시 차범근의 사진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그는 소속팀을 두번이나 UEFA 정상에 올려놓았으며 그를 계기로 그는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에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차범근이 한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레베쿠젠 클럽에서 발간한 책에 그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다. 그리고 그는 팀의 어느 곳에나 세울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일한 선수다..." 독일감독이 한 이야기다.

당시 분데스리가에는 차범근말고 또 한명의 동양인이 차범근보다 1년 앞서 진출해 있었는데, 일본의 오쿠데라였다.


당연히 이들은 라이벌이었다. 박찬호와 노모처럼... 차범근은 오쿠데라가 소속된 쾰론과의 경기에서는 언제나 펄펄 날았다. 반면 오쿠데라는 차범근이 독일에 진출한 이후 비실비실 힘을 잃고 주전자리를 잃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마테우스... 그는 차범근 전담맨이었다. 허구헌날 차범근을 놓쳐 눈물을 삼키고 좌절하다 절치부심 노력해 오늘의 그 자리에 오른 선수다.

독일로 떠나기전에는 어떠했는가... 70년대 국민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이런게 있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장단에 맞춘 떴다 떴다 차범근...

국제대회가 끝나고 나면 어른들 사이에는 차범근을 인간 문화재로! 하는 구호가 유행했다.

그가 남긴 전설적인 게임기록... 77년 대통령배 국제축구에서 말레이시아와의 개막전 대결.. 당시는 우리는 경기 종료 7분전까지 4:1로 지고 있었다. 그런데 차범근이 날기 시작, 마지막 5분동안 혼자서 세골을 넣어 4:4로 만드는 우리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연출하였다. 당시 차범근은 범아시아적인 스타로 동남아에 가면 지금도 중년의 택시기사들이 차범근 잘있냐고 물어올 정도란다.

그가 한국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차범근 서독진출 환송경기>가 열렸다. 차범근을 한번이라도 더 보러 3만 관중이 운집했다. 지금은 프로축구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올스타전이 열려도 이만큼 안 모인다...


월간좃선과의 인터뷰에서 차감독이 국내 프로축구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것이 스포츠정신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말이던, 기자와의 사담 과정에서 툭 던진 말이던 하여간 안그래도 요즘 광고도 줄고 형편 어려운 좃선.. 한껀 올렸다며 대서특필했다. 차범근 죽이기의 선두에 좃선이 나섰다.

하긴 좃선뿐 아니었다. 차범근이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선수들이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실력차가 너무 컸으며, 정몽준의 축구외교의 실패 내지는 국제축구계에서의 파워게임에서 밀려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면서 반성할 줄 모르는 차범근이라고 맹비난을 퍼붓던 언론들은, 차범근의 승부조작 발언으로 다시 먹다 남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차범근을 물어 뜯었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도 난리가 났다. 16강행을 망쳐놓더니 이제 축구관계자 모두를 모독한다고 펄펄 뛴 것이다. 뻔뻔하다느니 다시는 국내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느니... 한마디로 언론과 축협은 차범근을 축구계에서 사형시키고 있었다.

자 그럼 아래의 기사를 보시라. 96년 10월 21일자 스포츠 서울 기사다.

뉴 스 명 : 스포츠서울
등 록 일 : 96/10/21
등록시간 : 15:02:26

기사명 : 차범근 그라운드 산책중. 일부러 져주기 이젠 옛일로 돌리자.

내가 현대호랑이 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상대팀 감독이 나한테 "고맙다!"면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경기에 지고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데다가 그게 무슨 얘기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선수들을 채근했더니 이녀석들이 나몰래 상대팀과 기가막힌 약속을 하고 경기장에 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선수들이 "다음 경기에서는 우리에게 져주기로 했다"면서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정규리그와 아디다스컵대회가 있었는데 어차피 가망이 없는 리그에서는 져주고 대신 다른 대회에서 상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다.

호되게 야단을 치자 그제서야 선수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겨우 깨닫는 듯했는데 "범죄에 해당하는 이런 사고를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갖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스포츠맨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야바위꾼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열변(?)을 토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두해가 지났을때 아디다스컵 결승전을 앞두고 상대팀 감독이 전화를 걸어왔다."오늘 경기는 우리가 지면 안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도와 달라는 거냐?"고 묻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나를 잘 알고 있는 그 감독이 내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었다.

"열심히 하기나 해라"고 말한뒤 전화를 끊었지만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 나를 어렵게 했다. 그 경기는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을 테스트해보고 또 군대에서 돌아와 아직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이평재를 명단(GK)에 넣어 테스트도 할겸 출전수당도 조금은 받게 해줘야 하겠다고 했던 계획이 마치 부탁받고 일부러 그렇게 해주는 것 같은 오해를 받게된 때문이었다.

다행히 우승하겠다고 덤비는 그 팀을 우리팀의 후보선수들이 2-2로 끝내줬고 그바람에 당연히 우승할 것으로 믿고 잔뜩 준비를 해온 그팀은 그 자리에서 우승축하를 못하고 상대팀의 경기결과를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 후기리그 우승을 위한 싸움이 엄청나게 치열하다.바로 이때,어느팀이 든지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은 않고 쉽게 점수를 얻어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불행한 일이다.

비록 어제까지는 그렇게 했더라도 오늘부터는 참아야 한다. 정당한 승부를 해보겠다는 감독들의 자존심,이것은 우승보다 훨씬 더 멋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때에 심판들의 권위있는 판정과 감독들의 멋진 페어플레이 정신,그리고 선수들의 투지를 기대한다.

 
뭐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새삼스런 충격적 발언이고 축구인을 모독하는 배신이며, 지금에사 그런소릴 한다는건가. 그는 이미 2년전에 똑같은 소리를 했다.

오히려 월간좃선과의 인터뷰때처럼 지나가는 사담 정도로 한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또박또박 사례를 들어가며 국내 스포츠 신문에 커다랗게 써댔다. 그렇다면 승부조작설로 그를 영구제명한다는 축협은 왜 이번에만 이리 난리인가. 언론들은 또 왜 이리 날뛰고. 96년 10월 21일은 축구인들이 전국적으로 신문 안보는 날이었나?

차범근 사태의 본질은 그가 무슨 발언을 했는데 그게 사실이네 아니네... 에 있지 않다. 차범근을 사형대에 세우고 뒤에 숨어 월드컵 비난을 벗어나 자리보전 하려는 비열한 축협과 차범근 마케팅으로 장사 좀 해보려는 언론의 비정하고 천박한 한건주의... 또 이런 것들에 따라 휘둘리며 차범근 죽어라 욕해대는 국민들의 냄비근성... 이런 것들도 다 본질은 아니다.
 
4강후보로까지 점쳐졌으나 4강은 커녕 16강도 못오른 클레멘테 스페인 감독도, 숙명의 라이벌 아르헨티나에게 패해 16강에서 탈락한 호들 잉글랜드 감독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번에 크로아티아에게 깨졌을 뿐 아니라 지난 94년에도 4강 진출해 실패한 포크츠 감독도... 모두 그대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단 한번의 실패로 우리는 우리가 30년 가까이 좋아했고, 좋아할 자격이 충분했던 한 성실한 스포츠 영웅을 처절하게 난도질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쫓아내버렸다. 그리고는 쫓기듯 떠나간 중국에서 최근 안좋은 성적을 올리자 그거 쌤통이라며 고소해하기 까지 한다. 차범근이 잘했네 못했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한마디로 영웅이나 천재를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낄줄도 모르고 그저 즐기고 이용만 하다가, 맘에 안들면 바로 죽여버리는 우린, 차범근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주류를 벗어나는 즉시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지메를 가하는 우리 사회의 손바닥만한 포용력의 크기... 그게 바로 차범근 사태의 본질이다. 아는가... 차범근을 전세계에서 가장 미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라는 것을... 그래, 이렇게 발기발기 찢느니 차라리 차범근을 사형시켜버리자...

- 딴지스포츠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