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우주의 활물이다. 흙은 그 살이고, 물은 그 피이며, 벼와 이슬은 그 눈물과 땀이고, 바람과 불은 그 혼백이며 기운이다. 그러므로 물과 흑은 안에서 빚어내고, 햋빗은 밖에서 열을 가해 원기를 모아 온갖 물을 생성한다. 물과 나무는 지구의 모발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이며 이다."

담헌 홍대용(1731~1783)의 『의산문집』 중

홍대용은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라 불리는 실학자입니다. 학창시절 들어본 기억이 나시겠죠? 그의 사상 핵심 중 하나는 인간과 만물은 평등하다는 '인물균[人物均]'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했더군요.

"인간의 입장에서 물物을 보면 인간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물이 귀하고 인간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은 균등하다."

역지사지와는 또 다르죠. 흔히 근대 사상을 주체중심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주체중심적이라 함은 곧 인간 중심적, 이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백인 중심적, 남성 중심적 삶의 기획이 실험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해짐에 따라 나 아닌 남에 대한 승인, 이른바 '타자의 승인'이라는 명제로 '포스트~'라는 단어가 붙은 현대 사상의 특징을 만들어냅니다. 근대에서 무시되어 왔던 환경, 성,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형성되었지요.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주체 중심적으로 다수를 위한 담론에 얽매여 있는 것이 대세이고 현실입니다.

역사가 돌고 돌듯이 철학도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결국은 그 시대의 지배 윤리&사상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18세기에 조선의 철학자가 주창했던 실사구시의 이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현실화 되지 못했으니... 어쩌면 계속 소수의 논리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죠~

시대는 다르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유안진님의 시에서도 그런 느낌은 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소리내는 것이 있다.

땅바닥을 기는 쇠비름나물
매미를 꿈꾸고 땅속 꿈벵이
작은 웅뎅이도 우주로 알고 사는
물벼룩 장구벌레 소금쟁이 … 같은

그것들이 떠받치는
이 지구 이 세상을
하늘은 오늘도 용서하신다
사람 아닌 그들이 살고 있어서

유안진 『용서받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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