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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로 너무나 유명한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또 다른 이탈리아 이야기(?)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가 고대의 로마가 배경이었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로마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베네치아 공화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5세기 중반인 452년에 훈족 수장인 아틸라를 피해 석호 가운데 있는 섬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토대가 만들어져 18세기 말인 1797년 나폴레옹의 손에 멸망한 나라이다.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전체 15권에 이르는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읽기 쉬워보이지만, 되려 읽어내려가는데 힘겨움은 더했다. 그 차이가 무얼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크게 두가지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지었다.

그 중 하나는 쓰여진 시기인데...올해서야 국내에서 완간된 '로마인 이야기'의 시작이 1990년대 초였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여러 책 중 비교적 초기인 1980년과 81년에 쓰여진 책이다. 그 세월속에 시오노 나나미의 글 자체 혹은 번역가의 번역이 좀더 읽기 쉬워진건 아닐까 싶은 것 - 사실 이 이유는 좀 말이 안된다 싶기도 하다^^ -

또 하나의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를 소재로 한 책이지만 상당 부분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기술인 반면,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여서가 아닐까 싶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황제처럼 시대를 만들어가는 영웅적인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온갖 악행과 악정을 저지르며 시대를 역행한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른 이야기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그런데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주가 아니다. 간혹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등장하긴 하지만 대부분 특정 인물의 이야기는 짧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읽어내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상'권을 다 읽은 지금에는 역시 시오노 나나미라는 생각으로 '하'권을 기대하고 있지만 말이다....

'상'권의 대략적인 목차는 아래와 같다.

1장. 베네치아의 탄생 → 2장. 바다로! → 3장. 제4차 십자군 → 4장. 베니스의 상인 → 5장. 정치의 기술 → 6장. 라이벌 제노바 → 7장. 베네치아의 여인들.

애니웨이~ 언제나처럼 다시 되새겨볼만한 문구를 또 옮겨본다.


모든 국가는 반드시 한 번은 전성시대를 맞는다. 그렇지만 전성시대를 몇 번이나 갖는 국가는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한 번의 전성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몇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사의 권위자인 존스 홉킨스 대학의 레인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혼을 말한다.

"장기간에 걸친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립 끝에 베네치아가 승리하는 것은 해군의 힘이라든가 해전의 기술이라든가 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다. 베네치아는 1270년 이후가 되면 이미 이 점에서는 우위에 있지 않았다. 승리를 결정한 원인은 다른 방면에서의 두 국가의 능력 차이에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를 조직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에서 베네치아인과 제노바인 사이에 대단한 차이가 있었다." - 439P
다음 단락은 왠지 우리나라 여성들이 너무나도 부러워(?)할 듯하여 장문이지만 옮긴다.

그렇지만 베네치아 여인들이 몇 세기 동안이나 변하지 않고 달콤하고 관능적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스스로 발명한 하나의 제도 턱택이기도 했다. 이것은 18세기 희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작품에 의해서 유럽 전체에 유명해진 제도이지만, 그 이전에도 베네치아에는 18세기의 그것만큼 완성된 형태는 아니더라도 존재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카발리에레 세르벤테', 직역한다면 여자에게 봉사하는 기사라고 불렸던 제도가 그것이다.

여자라면 누구든지 능력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갖고 싶게 마련이다. 그러나 능력 있는 남자에게는 짬이 없다는 것도 역시 동서고금을 통해 한 번의 예외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여자는 능력있는 남자와 결혼한 행복을 만끽한 후 곧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은 남편에게서 충족되지 못하는 마음을 품게된다.

여기서 단념하고 집에 틀어박혀 가사나 육아에 전념하는 여자도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집에서 가만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자는 훌륭한 주부이며 어머니일지는 모르지만, 여자로서는 지나치게 남편을 마음놓게 하는 존재가 될 위험이 있다. 능력있는 남자가 종종 시시한 여자를 아내로 삼고 있는 예를 일일히 셀 수가 없을 만큼 많지 않은가.

그럼, 그건 곤란하다고 어디를 가든 아내와 동행을 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서 생기는 페해는 돌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여자란 남편의 일에 얼마나 정통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경향이 있어서, 그것을 나팔을 불고 싶은 유혹에 이기지 못한다.

베네치아에서 귀족의 일은 정치와 통상이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서로 비밀을 지킨다는 전제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다스러운 아내를 동행한다든가 하면 남자 쪽의 신용에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내를 내버려두는 데 따르는 페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롭고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임을 늘 보여온 베네치아의 남자들은 이 경우에도 여자들에게 남편이 없더라도 계속 여자답게 하라는 식의 불가능한 기대를 아예 걸지 않는다. 그 대신 '봉사하는 기사' 제도를 당당하게 공인해주었던 것이다. 남자들의 공인도 없이 그만큼 광범하게 이 풍속이 존속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베네치아의 기록은 '봉사하는 기사'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물론 완성된 형인 18세기의 그것이다.

'아침에 부인이 잠깰 때쯤 되어서 부인의 방을 방문한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옷을 입느냐, 보석은 어느 것으로 하느냐 등에 대해 다정하게 조언을 하면서 부인의 몸차림에 입회한다. 부인이 교회 미사에 가고 싶다고 하면 따라가고, 산책을 할 때는 다정하게 에스코트한다. 쇼핑에도 동행하여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하여 부인의 결단을 돕는다. 식사에도 종종 동석하고 살롱에서의 대화에는 생기있게 응대한다. 트럼프나 체스의 상대도 하고 무도회에 갈 때는 따라가고 극장에도 동행하며, 밤에 부인이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퇴거한다.'

요컨대 '봉사하는 기사'는 부인을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헤아림과 배려로 감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남편이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하는 모든 배려로 부인을 대할 필요가 있다. 가정 내의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도 다정하게 들어주고 격려한다. 때로는 조언을 하고 뭔가 즐거운 이야기를 해서 부인이 시름을 잊도록 힘쓴다. 그리 안이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정말 이상적인 제도이지 뭔가.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에서는 바쁜 남편을 가진 여자는 사제에게 참회하고 기도를 열 번 올리라는 말을 듣거나, 여자끼리의 수다로 넋두리를 하는 것 밖에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었다. 사교생활을 많이 할 수 있는 여자들조차도 이만큼 여자 마음의 미묘한 데를 찌르는 배려를 매일 받는다는 것은 여왕이라 하더라도 꿈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베네치아는 몇천 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들로서도 편리한 제도였음에 틀림없다. 안심하고 아내를 내버려둘 수가 있는데다가 이들 기사들에게 급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사 역할을 맡는 젊은 귀족들로서도 단순한 무료봉사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여자와 아주 가깝게 접하면 흔희 젊은이가 이성에 대해서 품기 쉬운 쓸데없는 환상에서 일찌감치 면역이 될 수 있었음에 틀림없기 떄문이다.

베네치아를 방문한 프랑스의 여행자는 이 제도에 놀라고, 봉사를 맡는 기사는 남편보다 열 배나 더 부인과 결혼하고 있는 셈이 된다고 말했지만, 그런 다음에 정말 프랑스인다운 의문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로 기사는 부인을 침실로 보내기만 하고 돌아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말이다.

물론 기사와 남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생긴 희극도 끊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런 걱정은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짓이다. 이런 경우 여자에게서 육체를 함께하느냐 하지 않는냐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자를 생기 넘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가끔 있는 육체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어지는 남자들의 찬미와 섬세한 배려에 힘입는 바가 더 큰 법이다. - 491~494P
얼핏보면 정말 어이없는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18세기 이전이었음 감안해야한다.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적 잣대로만 속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위의 두 인용을 통해 알수있는 것 중 확실한 하나는 베네치아인들은 동시대의 어떤 민족이나 국가보다 독특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독특함을 레인 교수의 말처럼 사회를 조직하는 능력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상'권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5장인 정치의 기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한 염증때문인지 몰라도 5장에 따르면 베네치아는 주변 모든 국가들이 군주제로 향해가는 시점에도 공화국을 유지하면서도 교황에 의한 지배를 받지않고 민주주의의 페해까지 방어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한 나라다.

야만족인 훈족의 침입에 밀려 바다로 도망을 간 사람들이 세운 국가. 때문에 육지에 아무런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 개펄에 말뚝을 박아 - 실상은 고도의 기술이지만 - 도시를 세운 국가인 베네치아는 건국 초기부터 꾸준하게 통상으로 성장해온 나라이다. 전성기 시절 국민이 채 10만을 넘는 국가에서 그나마 남자들은 대부분 해외통상활동으로 본국을 비우고 있는 나라에서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었다. 개혁이 꼭 필요했던 13세기에 그 동안 쌓아온 경제력을 기반으로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제개혁을 일궈내고 그 체제를 500년 동안 유지해온 나라. 그야말로 사회를 조직하는 탁월한 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상'권의 말미 '창작 뒷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2001년 당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치아 공화국과 일본을 동일시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시오노 나나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는 경제입국, 정치입국, 외교입국으로 진행된 역사예요. 자기네 나라가 정치입국이고 외교입국이라고 믿는 영국인들 중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외교입국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영국인이 과연 일본을 정치입국이고 외교입국이라고 평가할까요?" 어찌보면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국가의 성장순서가 바로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순서가 아닐까 싶다. 각국이 가진 자원의 차이로 오는 1차적인 한계를 뒤로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서면 내부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바로 정체개혁이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측면에서는 한참 경제가 전성기던 시절에 이루어내지 못한 정치개혁의 굴레속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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