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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멘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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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도시로 1세기 때 이미 존재가 알려져 있었으나,
525년 아비시니아군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래 침략과 번영의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1918년 터키인을 몰아낸 후 예멘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62년 북예멘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고, 1990년 통일 예멘의 수도가 되었다.
이슬람 시대를 통하여 학문·문화의 중심지였고, 뛰어난 학자·문인을 배출해왔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는 왕궁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 2부분으로 나뉘는데
동쪽의 구시가는 행정구·상업구이고,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많은 회교사원이 남아 있다.
서쪽의 신시가는 19세기 말 이래 발전한 곳으로 터키인과 유대인의 거주지구가 있었는데,
1949~1950년 유대인은 이스라엘을 향해 모두 떠났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2.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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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보물 창고라 불리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서, 공업 및 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부터 수·당 시대에 걸쳐 강국이라고 불렀다.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패망되기까지는 실크로드의 교역기지로 번창하였다.
11세기에는 티무르 왕조의 수도가 되었고,
뒤에 우즈베크인의 도시가 되었다가 1868년 러시아령이 되었다.
1925년부터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가 1990년 독립하였다.
시내에는 많은 사적이 있으며 11∼15세기의 묘소 샤이 진다, 티무르가 세운 구르에아미르묘,
리게스탄 광장에 있는 이슬람의 만드라사(최고학부), 울루그 베그의 천문대 등이 유명하다.
최근 칭기즈칸의 군대에 의해 폐허가 된 구시가의 발굴이 이루어져,
아랍 침공(8세기) 이전의 궁전 터와 화려한 벽화 등이 출토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3. 네팔 카투만두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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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분지의 중앙, 해발고도 1,281m 지점에 위치하며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칸티푸르라는 옛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10세기 무렵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말라 왕조 때부터이다.
18세기 후반에 말라 왕조의 뒤를 이은 구르카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네팔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
시가지에는 행정청, 옛 왕궁, 대학 외에 불교·힌두교 사찰이 많고,
특히 5층의 왕실 성묘, 탈레주(1549)와 목조 사찰 카트만두(1596년 건립,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로 유명하다.
카투만두 밸리라함은 수도 카투만두의 근교 두 고도인 파탄과 박타푸르를 모두 일컫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4. 이집트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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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라는 이름은 969년부터 불렸으나 도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현재의 카이로 남쪽 교외,
나일강 좌안에 해당하며, 로마·비잔틴 시대에 형성되었다.
바빌론이라고 하던 도시는 지금의 구카이로에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통치할 때에는 문화가 정체하였으나,
1798∼1801년 프랑스 점령시대에는 시가가 확장되었고,
영국과 터키의 연합군이 카이로를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터키의 주권하에 메메드 알리 왕조의 수도가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1882년 반터키·반영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영국군이 진주하고,
이집트의 영국보호령화(1918), 형식적인 독립(1922) 등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1946년까지 카이로를 지배하였다.
오늘날에도 카이로에는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며, 신시가에는 정부청사,회사,은행,호텔 등이 있다.
나일강 서쪽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고,
시내에는 옛 성채와 아므르사원(642)·알아즈하르 사원(970)을 비롯하여
많은 이슬람 사원과 궁전 등의 건축물·박물관, 그 밖의 문화시설이 있어
관광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5. 말리 젠네 & 반디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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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세기 나이저강과 바니강 사이에 있는 모래톱에 건설되었으며, 수운을 이용하여
강 상류 지역이나 남쪽에 있는 나라들과 교역도시 통북투를 잇는 중계항으로 번영하였다.
14세기 말리왕국 때 전성기를 누렸으며 송가이족 시대 이후 16세기 말
모로코의 사디왕조에게 정복당하였다.
모로코의 지배가 끝나자 19세기에는 유목민이었던 풀라니족이 점령하였으며
19세기 말에는 프랑스군의 지배를 받았다.
총길이 150km에 높이가 100-500m인 사암 절벽을 따라 250여 개의 도곤족 마을이 늘어서 있는
반디아가라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 중에 하나다.
모래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절벽과 고원의 장엄한 경관,
이곳에 거주했던 부족들이 세운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6. 모로코 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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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라바트의 동쪽 160km, 리스 산계의 남쪽 기슭에 있다.
801년 이드리스왕조의 제2대 이드리스 2세가 수도로 삼고,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276년에 마리니드왕조가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강가의 옛 도시가 페스알발리, 왼쪽의 새로운 도시가 페스알제디드이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나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독자적인 상공업이 발달되고 있다.
857년에 창립한 이슬람신학대학과 아랍문예 중심의 알 카라윈대학도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7. 시리아 다마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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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로는 디마시크라고 한다. 시리아 사막 중앙부에 있는 오아시스에 자리잡고 있다.
구약성서에도 그 이름이 밝혀져 있는 옛 도시로, 바울이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하려고 왔다가
이곳에서 성스러운 예수의 모습을 보고 뉘우쳐 독실한 사도가 되었다는
고사(사도 9장)가 말해주듯이 중동의 옛 종교문화를 보호, 육성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슬람교 제4의 성적으로 알려져 있는 다마스쿠스 대사원(오미아드모스크)은
705년 건설된 것으로 지금도 시의 중심부에 보존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그리스도교의 수도원이기도 하였다.
이 도시는 시가의 중앙을 동서로 흐르는 바라다강에 의하여 남북으로 나뉘어진다.

남쪽은 예로부터 발달된 시가지로 옛 성채·대사원·시장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에 그리스도교도, 남쪽에 유대교도의 거주구가 있고,
다시 그 남쪽 교외까지가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역이다.
다마스쿠스는 예로부터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의 통로가 교차되는
육상교통·교역의 요충지 및 순례지로서도 유명하였다.
기원전부터 오리엔트의 정치·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어,
다마스쿠스의 이름은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비문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8. 이란 야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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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 남동쪽 260km 지점, 자그로스산맥 동쪽 기슭의 고원지대에 있다.
그러나 카비르사막 부근이므로 기후는 매우 건조하고, 강풍에 날린 모래 때문에 피해가 크다.
테헤란에서 인도대륙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전에는 이스파한, 시라즈, 마슈하드에서 오는 대상의 집결지였다.
7세기에 아랍이 이란을 정복한 후 조로아스터교도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주변에서 아몬드, 향료 등이 생산되지만 식량은 훌라산 지방에서 들여온다.
1375년에 세워진 회교사원의 첨탑은 이란에서 가장 높다.


9. 인도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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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부터 산스크리트로 알려져 온 고도로 갠지스강 연안에 위치하며,
힌두교의 7개 성지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연평균 100만에 달하는 순례자가 연중 끊임없이 모여들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한다.
그들 순례자를 위하여 갠지스강변에는 길이 약 4 km에 걸쳐 가트라는
계단상의 목욕장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 한쪽에는 죽은 사람을 화장하여 그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장소도 있다.
시내에는 1,5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힌두교 사원이 밀집되어 있다.
바라나시는 비단 힌두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크교, 자이나교 , 불교 등에서도 성지로 치고 있어서 한층 종교적 특색이 짙다.
여행자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론리플래닛에는
역사보다 오래되고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로 표현되어 있다.


10. 중국 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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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의 성도로 주나라 무왕이 세운 호경에서 비롯되며,
그뒤 한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 동안
단속적이었으나 국도로 번영한 역사적 도시로 그 동안 장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가장 번영했던 당대에는 동서 9.5km, 남북 8.5km의 규모에 인구 100만이 넘는
계획적인 대성곽 도시를 이루어 멀리 서방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당나라의 쇠퇴와 그에 따른 병란으로 장안도 파괴되어 쇠퇴하였다.
구시가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고도의 면모를 간직하는 한편 관공서와 상점 등이 밀집해 있다.
역사적 도시로 사적이 풍부한 서안은 진시황의 병마용을 비롯한
고고학적 유적이 가득한 곳이다. 서안의 문화재 대부분이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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