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y Brave Bird

from 되새김질/BookS 2006. 8. 26. 20:22

내 이름은 메리 용감한새다. 운디드니에 포위 당해있을 때[1890년 12월 29일 사우스다코타 주 소재 운디드 니에서 제7기병대와 인디언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인디언 200여 명과 백인 병사 60여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1973년에도 인디언 인권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다시 한번 인디언들이 이곳을 점거하여 장기간 군경과 대치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도 그 사건에 참여했다] 아기를 낳은 나에게 사람들은 특별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히티가 윈(Ohitika Win), 즉 용감한 여인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떨치는 용기의 노래를 불러 주며 내 머리에 독수리 깃털을 꽂아 주었다. 나는 붉은 부족의 여인. 바로 수우족의 여인이다. 그러나 수우 족 여인으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총격전이 벌어져 총알이 벽을 뚫고 날아다니는 와중에 나는 첫 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다. 아이를 낳을 첫날, 경찰은 본격적으로 공객해 왔다. 나는 갓난아기를 담요에 싸서 안고 도망쳤다. 총알을 피해 땅바닥에 엎드릴 때마다 몸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기도를 드렸다. "이 몸은 죽어도 좋으니 아기만은 살려주소서"

나는 운디드니에서 살아 나왔다. 경찰은 산후 회복도 안 된 나를 소나무산마루 보호구역에 있는 유치장에 감긍하고, 아기까지 빼앗아갔다. 젖을 물릴 수 없게 되자, 젖가슴이 부풀어올라 돌덩이처럼 딱딱해지며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 뒤 1975년에 연방 경찰을 M16 총구를 내 머리에 갖다대며 통째로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인디언 여인으로 사는 일은 더 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애니 메이 어쿠어쉬는 미크맥족 출신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둔, 기백이 넘쳐흐르는 젊은 여인이었다. 인디언 여인이 지나치게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것을 꼭 현명한 처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애니메이는 소나무산마루 보호구역에 있는 한 골짜기 산기슭의 눈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사인을 동사로 발표했지만, 머리에는 38구경 탄알이 박혀 있었다. 미연방 수사국은 지문 확인을 위해 그녀의 손을 잘라 워싱턴으로 보냈다. 내 아기가 태어날 때 도와준 손이었다...

『내 이름은 용감한 새』 中

세상은 아직도 공평하지 않음속에 시달리고 있는가보다.
어쩌면 한번 정해진 그 불리함은 남은 인생을 지배할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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