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과 항우

from 되새김질/BookS 2006. 8. 29. 17:28

초한지를 얼추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에 와있으니 이제 슬슬 정리해봐야죠. 무엇이 제 머리속에 남아있는지를...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다양한 성격을 보여주며 어떻게 권력을 잡아가고 각자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지가 아무래도 초점이지요. 그 안에서도 유비, 조조, 손권처럼 결국 주인공인 유방과 항우에 가장 많은 관심이 갑니다. 특히 너무나 대조적인 두 인물의 성격에...(삼국지에서 유비 vs 조조와 흡사하지만 더욱 극명하게 두 인물의 성격이 다릅니다.)

제가 주저리~ 설명하는 것보다 부분 발췌하는게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실듯...하여^^

초한지 4권 1장 '치밀한 포석'에서 유방의 오른팔인 장량은 위왕 위표와 하남왕 신양을 설득해 초나라를 배신하고 연횡책을 맺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길을 떠납니다. 남의 편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장량은 이때 위왕 위표를 설득하기 위해 유방과 항우의 사람됨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성공하죠. 위표는 이미 장량을 만나기 전부터 목을 베 초왕 항우에게 보내고자 다짐하고 그를 접견합니다만, 어느새 죽여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립니다.


"오늘만큼은 천하 정세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대왕께서 하문하시니 어쩔 수 없이 솔직한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 천하 대세의 흥망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조짐으로 볼 때 한(유방)은 흥하고 초(항우)는 망할 것 같습니다."

이에 위표가 놀라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장량은,

"먼저 한왕 유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방은 무엇보다도 성품이 부드럽고 어집니다. 한마디로 관인후덕형이지요. 그는 한중에서 출격하여 관중을 평정하기까지 채 한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로 덕 입니다. 한군이 관중으로 나왔을 때 관중 백성들은 한결같이 한왕 유방을 환호했습니다. 천하 명장 장함이 패한 것은 그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반면 한왕은 덕으로써 관중 백성들을 사로잡아 단숨에 함양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한황의 덕은 거기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나라와 조나라가 한왕에게 복종할 기미를 보이는 것도 그 증거 중 하나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조나라는 초나라를 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제후도 겉으로는 항왕에 승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한왕 유방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하 대세의 흐름이 이러할진대, 어찌 한이 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패왕 항우는 확실히 강합니다. 그러나 그 강함에는 덕이 없습니다. 항우의 성품은 우직하면서도 흉포하여 모든 것을 제 멋대로 합니다. 유방보다 늦게 관중에 도착했으면서 관중 땅을 빼앗았고. 그 후 팽성으로 돌아가서는 의제를 살해했으며, 기존의 제후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을 따른 사람들에게만 봉호를 내렸습니다. 그 바람에 천하 인심은 송두리째 그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대왕께서는 덕을 존중하는 왕이시므로 잘 아실 것입니다. 천하의 인심을 잃고 망하지 않을 왕은 없습니다. 이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조만간 항우가 망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장량이 유방의 오른팔이니 당연히 이렇게 말했지요. 하지만 그의 표현이 다소 편향적이라 할지라도 분명 사실입니다. 항우는 너무 강합니다. 너무 강하기에 유방은 그와의 전투에서 70여번을 맞붙었지만 모두 패합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단 한번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방은 도주에 있어서는 1인자입니다. 겁이 많고 매사에 자기 주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일도 자주합니다. 애시당초 가난한 촌부였기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패력이 대단히 좋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는 유일한 장점인 사람을 부릴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시점에 통이 크다는 것으로 아래 사람들을 휘어잡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기때문에 잘 아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가 이전에 반대하던 사람이던 촌부던 적이던 가리지 않고 그 능력을 위해 높이 중용합니다.(그의 이런 포용력과 장점도 황제가 된 이후에는 많이 사라집니다. 실제 개국 1등 공신이며 유방을 위해 실제 대부분의 전장을 누빈 한신이 제일 먼저 숙청대상자가 되지요;;;)

항우는 지나치게 강합니다. 너무 강해 그 강함이 결국 발목을 잡습니다. 몰락한 명분의 자제로 '멸진'을 가슴깊이 박고 사는 그에게는 대부분의 결정이 패도적입니다. 그런 그에게 범증이라는 시대의 기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항우의 기가 더 강했던가 봅니다. 평소에는 매우 자상하고 부하를 신뢰하고 인정도 많지만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추호의 용서도 없습니다. 말살이 그의 답이죠. 말살도 그냥 말살이 아니라 대학살이나 생매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어찌보면 항우와 유방은 가장 큰 차이는 '용서'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유방은 사람을 늘 용서하고 포용하는 스타일이라면 항우는 한번 돌아선 사람은 오로지 적일 뿐입니다. 혼란하기 이를데 없는 시대에 한 번의 실수와 판단을 용서받을 수 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따를 사람은 뻔하지 않을까요? 꼭 시대가 혼란스럽고 어지럽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한 부분을 더 발췌해보죠. 5권에서 결국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 황제로서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스스로 본인의 장점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내 그대들에게 한가지 물어보겠소. 짐은 열후와 장수들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소."

"......?"

제후와 신하들의 눈이 모두 유방의 입으로 쏠렸다. "항우와 나는 함께 일어나 5년 동안 천하를 다투었소. 분명 항우는 강했고, 나는 약했소, 그런데도 나는 천하를 얻었고, 항우는 천하를 잃었소. 그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 중략 -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대답이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어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자방(장량)보다 못하오. 또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면서 운송로를 끊이지 않게 하는 일은 내가 소하보다 못하오. 또 군대를 통솔하고 싸움에 임해 승리하는 일은 내가 한신보다 못하오.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바로 이러한 걸출한 인재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는 점이오. 반면,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나 그마저도 끝까지 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 잡은 천하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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