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new/beijing/read.nhn?ctg=photoNews&oid=307&aid=0000000052
<날아라 허동구>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기존의 신파 장르와 비슷한 길을 간다. 그러나 <말아톤>이나 <허브>처럼 장애인과 그의 부모가 흘리는 눈물로 관객들에게 읍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날아라 허동구>는 훨씬 담백한 성장담이다. 지적장애인인 11살 난 허동구(최우혁)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사는 억척스러운 아버지(정진영)가 함께 험난한 세상을 건너는 내용이라면 이미 흔하게 봐 온 것이다.
대신 이 영화는 세상에 맞서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장애인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장애인과 그 주변의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
동구는 IQ 60의 학습 지진아지만, 학교에 가는 걸 엄청 좋아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허름한 치킨집을 운영하는 동구의 아버지는 오직 동구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인심이 그리 후할 리 없다. 학습 능력이 부족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딴 짓을 일삼는 동구를 담임 선생님은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반 평균 성적이 깎이는 게 싫어 동구를 등교하지 못하게 막을 정도다.
그래서 교장과 담임선생님은 동구 아버지에게 특수학교 진학을 권한다. 아버지는 주저 없이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 그저 동구가 좋아하는 학교를 다니며 ‘물 반장’만 할 수 있다면 족하다며. 동구는 자신의 이름보다 ‘물 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누구보다 일찍 등교해 주전자에 물을 떠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 일은 동구가 학교에 유일하게 기여하는 방법이고 또한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방법이다.
늘 동구를 놀려 먹기 일쑤인 같은 반 급우들에게 동구 아버지가 치킨을 싸 들고 와 환심을 사야 하는 이유, 조금의 고민도 없이 동구가 특수학교가 아닌 지금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동구가 지금 가장 좋아하고, 익숙해져 있는 방식을 단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만이라도 지켜주고 싶다.
동구가 학교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을 외우는 데 걸린 세월만 해도 3년. 수업 따위 알아듣지 못해도 그저 동구가 좋아하는 주전자를 들고 물 반장만 할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학교를 고수해야 하는 건 아버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당연한 수순처럼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자존심도 없이 웃어대는 동구를 짝 윤찬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윤찬은 동구가 물을 담아 놓은 주전자에 개구리를 집어 넣고, 이 사건으로 결국 각 반마다 정수기를 구비하게 된다. 갑자기 자신의 할 일을 잃어버린 동구는 그 상실감에 어쩔 줄을 모른다. 또 동구의 아버지는 건물주가 치킨 집을 팔겠다고 나서, 이사를 해야 할 위기에 놓인다. 이사를 가면 동구가 집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지금의 가게를 구입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아버지에겐 없다.
<날아라 허동구>가 상투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지점부터다. 대만의 베스트셀러 소설 <나는 백치다>를 각색한 이 영화를 연출한 박규태 감독은 동구에게 세상의 짐을 쥐어주는 대신, 세상과의 소통 방안을 모색한다. 그 방법이 바로 야구다. 동구는 학교 운동장을 거닐다 우연히 야구부와 맞닥뜨린다.
마침 물 당번하던 선수가 전학을 가버린다고 탈퇴해 버리는 바람에 야구부의 권코치(권오중)는 동구를 야구부원으로 받아들인다. 동구는 야구부에서 물 반장을 계속 할 수 있어 좋고, 동구의 아버지는 동구가 야구부를 하면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어 좋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야구팀의 인원이 동구까지 딱 9명이기 때문에 동구는 다른 학교와의 시합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당연하게도 동구는 야구의 룰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때 동구의 짝 윤찬이 동구가 야구를 할 수 있게 돕겠다고 나선다.
윤찬이 동구를 친구로 여기게 된 까닭이 있다. 심장이 약해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윤찬은 체육 시간이면 벤치를 지켜야 하는 신세. 동구는 한 바퀴만 뛰라는 선생님 말에도 아랑곳 없이 두 바퀴를 뛴다. 한 바퀴는 짝의 몫이라면서. 동구의 바보스러울 만큼 순수한 기색에 마음의 문을 연 윤찬은 동구에게 야구의 개념을 설명해 준다.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에 들어오면, 즉 집에 도착하면 1점이라고.
그러나 동구가 야구의 ‘집’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공이 날아오면 두 눈을 질끈 감는 바람에 공 한번 쳐 보지 못하고 아웃을 당하기 일쑤. 윤찬은 끈질기게 동구의 연습을 돕던 끝에 ‘번트’라는 기술을 생각해 낸다.
번트는 동구가 홈런을 칠 수는 없어도 방망이로 공을 맞춰 1루에 진출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다. 드디어 다른 학교와의 시합날, 동구의 한 방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동구는 똑바로 공을 바라보며 단 한번의 번트를 쳐 낸다. 그 순간이 중요한 건 동구가 아웃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아라 허동구> 이전에 ‘번트’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던 영화는, 동구가 번트로 이뤄낸 한 뼘의 성장과 행복을 아주 소소한 일상 가운데 담아낸다.
동구에게 야구는 세상과 이어지는 끈이다.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첫 걸음은 공을 쳐내는 것, 즉 공격이다. 동구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세상의 온갖 편견과 술수로부터 방어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러나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방어와 더불어 공격도 필요하다. 동구에겐 그것이 바로 번트다.
야구를 통해 장애인과 세상이 접점을 찾아가는 이 아름다운 우화는 오직 홈런만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긴다. 때로 야구의 기본이 번트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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