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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307&aid=0000000049&

영화는 삶이 아니지만 삶은 영화다

영화속 장애인체육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조승우)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얼룩말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얼룩무늬 스커트’에 손길을 뻗었을 때도, 거리에서 ‘얼룩무늬 핸드백’을 만졌을 때도, 그 이전에 동물원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그의 눈길은 늘 얼룩말이나 얼룩무늬를 쫓았다. 더 거슬러 영화의 첫 부분에서 초원은 세렝게티의 얼룩말을 이야기한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는 수십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중략) 저기 갓 태어난 새끼와 함께 있는 어미 얼룩말이 보이는군요. 이제 새끼에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야생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끼들 죽여 내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초원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도 ‘자폐는 병이 아니라 장애’라는 대사가 나오듯, 자폐는 아픈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고 따라서 치료가 아니라 적응과 극복이 필요하다. 새끼 얼룩말에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이 필요하듯 말이다.

장애아를 가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동생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어긋나기도 한다. 모든 관심과 노력을 장애아들에게 쏟는 엄마 역시 위장천공으로 병원신세를 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런 갈등들이 잘 풀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네모반듯한 식탁에 놓인, 다 먹어치운 자장면 그릇 네 개. 영화에서 엄마와 아빠, 초원이와 동생이 모두 함께 밥을 먹은 것도,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것도 이 장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어쩌면, 초원이와 같은 자폐아의 마음을 더 굳게 만드는 것은 사회일 것이다. 의사소통에 서툴러 남들과 다르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누군가 그걸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다면 자폐의 벽은 그리 높지 않다. 영화에서 마라톤 코치가 보여준 변화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여 춘천마라톤의 말미, 지쳐 쓰러진 초원이가 다시 일어나 달릴 때 할인점과 수영장, 지하철, 야구장을 거쳐 초원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얼룩말과 함께 달리는 장면은 사회와의 벽이 허물어진 것을 보여준다. 자폐의 벽은 아마도 사회의 벽과 그 높이가 비슷할 것이다.

적응과 극복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존감과 자신감이다. 곧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장애가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자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작고 하찮더라도 성취가 중요하다. 그래서 초원이는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 10km 단축마라톤은 42.195km 마라톤 풀코스 완주로 이어졌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 씨는 19살이던 2001년 춘천마라톤에 참가해 2시간 57분 7초로 ‘서브3’를 달성했고, 이어 이듬해인 2002년에는 철인 3종경기에 출전해 15시간 6분의 기록으로 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를 완주했다. 철인 3종경기의 기록은 장애인, 비장애인을 통틀어 우리나라 최연소 완주기록이다.

이제 영화도 끝나고 마라톤도 끝나고 철인 3종경기도 끝났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완주를 축하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나면, 형진 씨에게도 형진 씨 몫의 일상이 주어진다. 어머니 박미경 씨는 이제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방송(KBS) 인간극장은 지난 2002년 8월 ‘달려라 내 아들’에 이어 영화가 만들어진 후인 2005년 4월 ‘달려라 내 아들 그 후’를 방영했다. 후편은 마라톤 참가와 영화 이후 달라진 형진 씨의 생활을 보여준다. 형진 씨는 공장에 취직해 회사 생활을 하고 있고 틈틈이 행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마라톤 역시 1주일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연습하고 있었다.

“형진이에게 마라톤을 가르칠 때에는 하나의 산을 넘는 느낌이었는데, 홀로서기를 가르치면서 ‘이제 산 중턱쯤 왔겠지’싶어 뒤돌아보면 여전히 초입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가장 큰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에요.”

어머니 박미경 씨의 말이다. 하지만 생활의 차이보다 더 큰 변화는 형진 씨 마음의 변화다. 영화에도 나오듯 자폐아들은 뭔가를 주거나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마라톤 코치에게 물병을 건네듯, 방송 제작진에게 간식을 건네기도 한다.

지금 형진 씨는 홀로서기 중이다. 늘 엄마와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구하던 예전의 형진이가 아니다. 혼자 출퇴근하고 집정리를 하며 일상을 배우고 있다. 어머니 박미경 씨의 말처럼, 마라톤을 중간에서 포기하면 안 되듯, 삶이라는 마라톤에서도 포기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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