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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법당'에서 열리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 내용을 녹취하고 정리하여 발행한 책이 바로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라는 책입니다. 2004년 5월에 첫 발행된 책을 제가 읽은 것이고 2006년 10월에 두번째 책이 출간되었더군요 - 저는 두번째 책을 먼저 접하고 나서(읽은 것은 아니고) 뒤늦게 이 책을 구매해 읽었지요.

법륜스님이야 워낙 유명하시니 제 설명이 구차해질 것이고 - 사실 그 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요. 정토회를 설립하셨다는 것 정도;;; - '즉문즉설'은 말 그대로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법사가 적절한 답을 하는 '대기설법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대기설법의 전통'이 무엇이냐? 라고 설명을 하면 또 길어지겠지요. 그 내용은 이 책의 서문에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법륜스님이 만드신 정토회는 1985년 역시 법륜스님이 설립하신 중앙불교교육원을 모태로하여 설립된 단체입니다.
정토회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여기에 정리가 잘 되어있으니 참조하세요^^

종교인이 종교적 입장에서 쓴 책들을 보면 참 쉬워 보이면서도 어렵습니다. 쉬워 보이는 이유는 어려운 문제도 선문답을 통해 쉽게 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해결책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것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그 또한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제 마음속에 담겨있죠.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거의 뒷전으로 밀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 들을때는 접할때는 이해가 되고 쉬워 보이면서도 막상 행할려고 하면 움직여지지가 않죠.

이 책의 제목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입니다만, 그보다는 '지은 인연을 알면 괴로울 일이 없다'라는 부제(?)가 먼저 다가옵니다. 제가 지은 인연이 무었일까요?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겨보면

"이 세상의 모든 원리는 인연과의 법칙이다. 이 세상은 인연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밭에 호박 싹이 텄으면 그것은 호박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씨는 '인'이며, 싹이 트는 것을 '과'라 한다. 싹이 틀 수 있게 하는 물, 온두, 공기를 '연'이라고 한다. 씨앗만 있고 밭이 없어도 싹이 트지 않고 밭만 있고 씨앗이 없어도 싹이 트지 않듯이 '인'만 있고 '연'이 없으면 '과'가 일어나지 않으며, '연'만 있고 '인'이 없어도 '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인연'이 만나야 '과'가 일어나며 '과'가 일어났다면 반드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말이 다 이해되진 않습니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책 안에는 법륜스님이 하신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기억이 남는 다른 문구들도 옮겨봅니다.

상대의 심정을 이해해 버리면 누구 가슴이 편합니까? 내 가슴이 편합니다. '저 여자는 왜 저리 미쳐 가지고 저러나?'하고 생각하면 누구 가슴이 답답합니까? 내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건 나한테 손해지요. 그 사람이 하는 행동과 생각을 이해해 버리면 내 가슴이 후련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나를 이롭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조건 그 사람 말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내 양심이나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겉으로만 굽히고 사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 P 41~42
흔히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잘 몰랐지요. 법륜 스님은 남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네요. 내 잣대로 남을 보지말고 그냥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역시 쉽지 않죠?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함께 있으니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아, 저 사람은 취향이 다르구나, 저 사람은 생각이 저렇구나, 저 사람은 견해가 저렇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다투고 괴롭고 그럴까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보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보는구나, 내 견해는 이런데 저 사람 견해는 이렇구나, 내 취향은 이런데 저 사람 취향은 이렇구나.'하고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그대로 아는 것이 상대를 인정하는 겁니다.

인정하는 게 바로 상대를 존중하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훌륭하다고 하는 게 존중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 그렇게 행동하고, 그 사람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 취미는 그렇다고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곧 그를 존중하는 겁니다. - P 48~49
역시 위와 연결되는 내용이지요? 상대를 인정하는 것.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통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르다는 사실을 신경쓰지도 않지요. 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안에 상대방을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왜 너는 그러느냐? 라며 짜증 혹은 화를 내지요. 그냥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될 일을....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고, 모르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입니다. 모르는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애정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라도 더 깨우쳐 주려고 하는 애정에 비례해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두 번째는 기술입니다. 기술은 지식을 많이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충분히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지금 이렇게 가리치면 뭐가 문제가 될까 하고 생각하면 강의를 하면 문제가 좀 쉽게 해결될 듯 합니다. - P 94
어떤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법륜스님의 즉답입니다. 제 아이들을 대할때 -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요 - 유념하고자 옮겨뒀습니다.

이게 다 우유부단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왜 우유부단할까요?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우유부단한 제 성격 탓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이것 쥐려니 저것 놓칠 것 같고, 저것 쥐려니 이것 놓칠 것 같고, 두 개 다 쥐려고 눈이 둥그레져서 쳐다보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겁니다. 결정이 빠르면 '저 사람 성격이 강하다'라고들 말하는데 성격이 강한 사람은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포기를 과감하게 해 버리거든요. - P 158~159
요즘 제 고민을 담고 있는 질문에 대한 즉답이라 옮겼습니다. 우유부단의 원인은 결국 욕심이었군요. 성격이 아니라 말이죠. 다음 글은 좀 깁니다. 일상에서 수행하는 방법과 관련된 말씀이죠.

그러니 그런 문제는 놔두고, 지금의 내가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지금보다 더 기쁘게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가능한 것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잘못한 줄 알았으면 뉘우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잘못한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또 안다고 해도 뉘우치기가 싫습니다. 그걸 인정하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잘못했다면, 그것이 잘못한 일이라는 걸 10년 뒤에 아는 게 좋습니까, 그 날 아는게 좋습니까? 어떤 것이 나에게 이롭습니까? 10년 뒤에 알았다는 것은 그 무지의 상태가 1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손해가 큽니까? 그러니 잘못했을 때 잘못한 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알았으면 뉘우치면 됩니다. - 중 략 -

둘째, 틀린 줄 알았으면 고쳐야 합니다. 틀려놓고도 틀린 줄 모르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틀린 줄 알고도 못 고치는 건 큰 손실입니다. 안 틀리려고 전전긍긍 하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틀린 게 발견되면 즉시 고치면 됩니다.

셋째,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모르면서 아는 체합니다.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고 말은 하지만 조금만 물어보면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잘 모르면서 그저 남의 말 듣고 이러니 저러니 하고 다비니다. 그리고 자기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 중 략 -

우리가 안다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요?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그것만 알아도 많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르면 물어야 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 하지도 말고, 모르는 걸 큰 죄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물으면 됩니다. 세상에 대해 우리 인간이 아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0.1%도 안 될 거예요. 많이 아는 살마도 0.1%를 채 알지 못하니, 많이 아는 사람과 조금 아는 사람의 차이가 나 봤자 얼마나 나겠어요? 우리는 모두 모르는 사람에 속합니다. - 중 략 -

'아, 이건 내가 몰랐구나'
'아, 이건 내가 틀렸구나'
'아, 이건 내가 잘못했구나'

그렇게 인정하면 삶이 참 자유롭고 가벼워집니다. - P 166~170
일단 위 세 가지라도 잘 따라볼려합니다. 내가 부족함을 잘 이해하고 인정하는 훈련이 되겠지요. 책 속에 있는 법륜스님의 즉답안에는 많은 것들이 더 담겨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잘 다스려지지 않으실때 한번씩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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