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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장편소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의 두번째 권을 마쳤습니다 - 읽었습니다 - 전권에 비해서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읽은 셈이죠;;;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동시에 고전학자인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지은 이 책은 앞서에서도 말씀드렸지만 1934년에 지은
『나, 클라우디우스』와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를 번역하여 3권이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때문에 번역본 2권인 이 책에서는 『나, 클라우디우스』의 후반부와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의 전반부가 펼쳐지죠.

앞부분은 주로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폭군 칼리굴라의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끝까지 바보 노릇을 하며 살아남고 결국은 근위대에 의해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황제로 추대되는 장면을 끝으로 책이 매조지되죠.

그리고 시점을 좀 뒤로 옮겨 원작인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가 시작됩니다. 여기에서는 클라우디우스가 황제가 된 초기에 업적과 그의 치세에 큰 도움을 준 유대의 왕 헤로데 아크리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전편에서 악으로만 보여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인인 리비아에 대한 클라우디우스의 생각도 조금은 바뀜을 알 수 있죠.

2권의 시작은 그동안 내내 클라우디우스를 무시하고 바보 취급을 하던 할머니 리비아가 그를 조카인 칼리굴라와 함께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저녁식사자리에서 리비아는 클라우디우스에게 칼리굴라가 다음 황제가 될 것이며 언젠가 클라우디우스가 황위에 오르게 될 것이며 그러면 이미 죽어있을 리비아 자신을 신격화 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클라우디우스는 신격화에 대한 약속을 하는 대신 오랫동안 자신이 궁금해하던 제국내의 독살 소문 - 그의 아버지와 형을 포함한 - 에 대해 리비아가 아는 모든 것을 전해듣게 됩니다. 둘 사이에 모종의 타협점이 생긴 것이라고 봐야할까요?^^

이후는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구절들을 옮겨봅니다만, 역시 제대로 볼려면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좋겠죠^^

하지만 그녀를 방문하여 나눈 긴 대화를 이야기하 전에, 행여 독자들이 혼동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 분명히 밝혀두어야겠다. 독자들은 반역죄 재판과 여러가지 만행의 이야기로 인해 아마 티베리우스 치하의 제국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휘청거렸으리라고 추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티베리우스가 비록 새로운 공공사업에 손대지 않았고 그저 아우구스투스가 시작했던 일을 마무리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긴 했지만, 그는 로마의 육군과 함대를 온존하면서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했으며, 각 지역의 공직자들에게 정상적인 봉급을 주면서 1년에 네 번씩 상세한 보고서를 쓰도록 시켰고, 무역을 장려하고 이탈리아 내의 옥수수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였고, 도로와 수도를 철마다 보수하였으며 공적이고 개인적인 사치를 여러가지 방식을 규제했다. 또한 식료품 가격을 안정히켰고 해적과 산적을 진압했으며,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공공 재정을 넉넉하게 보유했다. 그리고 한번 임명한 속주 총독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통치의 안정성을 위해 그 임기를 장기적으로 보장했다. 물론 그들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는 가운데 말이다 - 중 략 -

나는 티베리우스의 업적을 얘기하고 있다. 실제로 제국이 관점에서 본다면 그가 지난 12년 동안 현명하고 공정한 통치자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비유를 하자면, 벌레가 과일의 고갱이를 좀먹는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도 않으며 또 과일 전체를 썩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약 500만명의 로마 시민 중에서 기껏해야 이삼백 명 정도가 티베리우스의 광기로 고통받았을 뿐이다. 나는 말이 사람이지 사실은 가축이나 다름없이 취급받는 수백만의 노예와 속주민이 아우구수투스와 리비아, 그리고 티베리우스로 계승된 제국 아래서 완벽하게 보호받으며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16~18P

위의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클라우디우스 역시 통치자의 역활에 가까워질수록 그가 비난과 부정을 해왔던 - 물론 속마음으로만 그랬지만 - 해왔던 아우구스투스와 리비아 그리고 티베리우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티베리우스의 사후에 이어지는 칼리굴라의 엽기적인 통치를 옆에서 지켜보며 더욱 큰 영향을 주었음을 클라우디우스 자신이 알게되죠.

센티우스가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실감이 나십니까? 지금 우리가 마침내 자유인이며, 더 이상은 폭정에 짓눌린 노예까 아니라는 사실이 과연 실감 나십니까? 오, 저는 여러분의 심장도 저처럼 너무나 자랑스럽게 두근대고 있음을 잘 압니다. 비로 이 축복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기뻐합시다. 행복하다고 말합시다. 저 고대의 위대한 로마에서처럼 '우리는 자유인이다!'하고 말하는 것이 지난 백년 동안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론 여러분들도 이 아름답고 당당한 말을 내뱉는 것이 옛날에는 어뜬 느낌이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 이 순간 제 영혼이 구름처럼 가볍다는 것입니다! 쇠약한 노인들이 결국 오랜 노예의 질곡을 끝내고 행복하게 '우리는 자유인이다!'하고 외칠 것입니다. 자유에 대해서는 그 이름밖에 몰랐던 젊은이들도, 온 세상이 기뻐 날뛰며 '자유다!'하고 외치는 것을 보며 참된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형제인 여러분. 미덕만이 자유를 지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폭군의 가장 큰 악행은 미덕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폭군은 아첨과 공포만을 가르치지요! 폭군 아래서 우리는 바람앞의 지푸라기와도 같았습니다. 폭군의 첫 번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지요. 그의 통치 이후로 우리는 나날이 괴로웠습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들은 점점 더 질이 떨어졌으니까요. 그중에서도 최악은 칼리굴라고요! 그의 영혼이 불지옥에 떨어지기를!  - 294~295P
폭군 칼리굴라가 죽은 후에 클라우디우스가 근위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카이사르이후에 계속 황제에 눌려왔던 원로원이 자유를 외치며 공화정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제정이 주는 익숙함을 알고 있었고 동시에 유명무실해진 원로원의 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칼리굴라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클라우디우스 역시 제정보다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문제죠. 이런 시기에 등장한 유대의 왕 헤로데 아그리파가 결국 제정이 계속 이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비록 황제와 원로원의 말을 거짓되게 전달하였지만 그가 아니였더라면 로마는 다시 한번 내란으로 피의 제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지요. 헤로데 아그리파가 원로원에서 한 말은 일부를 옮깁니다.

그가 카피톨리누스 언덕이 신전에 도착하자 집정관은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내가 황제로 추대된 것에 크게 놀라는 척 했다. 그는 로마의 정치에 대해 자시는 완전히 중립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되풀이했다. 자신은 동맹국의 왕일 뿐이며 로마의 영원한 친구이므로 로마가 어떤 정치 체제를 선택하든 자기는 여전히 친구로 남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제 충고를 원하시는 모양이니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공화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주 훌륭한 정체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애로운 제정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정체가 다른 정체보다 절대적으로 낫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요. 그 정체가 합당한가 하는 문제는 대중의 분위기, 통치자의 능력, 국가의 영토 크기 등 여러가지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체든,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은 바로 이것이지요. 민주정이든 금권정이든 귀족정이든 제정이든 군대가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다른 어떤 실질적인 조언을 하기에 앞서 먼저 물어보고 싶군요. 군대를 장악하셧습니까?" - 298P
헤로데 아그리파의 말은 그 시대의 특성과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미 근위대를 중심으로 한 로마의 군은 클라우디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만으로 '우리는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는 원로원의 귀족들 - 실제 서민들의 반응은 또 다르죠. 어차피 누구에게든 통치받는 입장이니 '자애로운'이라는 헤로데 아크리파의 표현이 더 중요할 뿐 - 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내전뿐이니까요.

헤로데의 도움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황위에 오른 클라우디우스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속 마음을 뒤로 숨기로 황제로서 제국의 정상화에 힘을 기울입니다. 그는 칼리굴라가 개인적 사치를 위해 만든 불필요한 세금을 모두 없애고 서민들의 생활을 안정화시키죠. 그리고 원로원과 합의하여 할머니에게 약속한데로 리비아의 신격화도 성공합니다. 정작 본인을 신격화하겠다는 수많은 제안들은 거부하지요. 하지만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는 것에 치중하던 그도 게르만과의 전쟁을 성공리에 마치고 읽어버린 독수리 깃발을 찾아오면서 신격화에 동의를 합니다.

나는 갈바가 카티족을 치러 가는 원정에 마음으로 동행했다. 이것은 보복전이었다. 나는 라인 강이라는 자연적 국경 너머까지 제국을 확대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카티족과 게르마니아 북쪽 부족들이 이 국경을 존중하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위대한 로마의 단호함을 보여야 할 때이다. 게르마니쿠스는 게르만인들에게 존경을 얻으려면 그들을 잔혹하리만치 두들겨 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가 이런 표현까지 쓰는 민족은 게르만인밖에 없었다.

히스파니아인들은 정복자의 정중한 예법에 감화된다. 갈리아인들은 정복자의 부에 감화되고, 그리스인들은 정복자의 예술에 대한 존중에, 유대인들은 정복자의 도덕적 권위에, 아프리카인들은 정복자의 이성적인 태도에 감화받고 만다. 그러나 이 게르만인들만큼은 그 어떤 것에도 감화되지 않았고 먼지가 날 때까지 두들겨 맞고도 다시 일어나고 신음을 내면서 일어났다 또 쓰러지길 반복한다. 그들은 '상처가 쓰라린 동안만 자기의 주인을 존경하는' 족속이었다. - 중 략 -

이것은 단순한 보복전이 아니었다. 원정 명령을 내리기 전 나는 아우구스투스 신전에 희생제를 드리고 이제 형 게르마니쿠스가 물려준 미완의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고 고했다. 그것은 바로 게르만인의 손에 넘어간 지 벌써 30년이나 된, 바루스가 잃어버린 마지막 독수리 깃발을 찾는 것이었다. - 394~395P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자신의 근위대에 있는 게르만 경호병들에게 마지막 깃발이 있는 위치를 파악한 클라우디우스는 가비니우스에게 명령해 깃발을 찾아오는데 성공합니다. 되찾아온 깃발은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에 봉헌하면서 그는 그 동안 거부해왔던 자신의 신격화를 받아들이죠.

세금을 인하하고 게르만 원정을 통해 국경의 안전을 다치고 마음으로 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대단위 공공사업을 하면서 클라우디우스는 공화정에 비해 제정이 가지는 장점들을 이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와 리비아. 특히 그의 할머니 리비아가 제정을 지키려고 그토록 애를 쓰고 스스로 '악'을 행하였던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 나는 비텔리우스와 항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기에는 공화정보다 제정이 훨씬 유리하지요. 세상의 모든 웅장한 건축물들은 왕이나 황제가 벌인 일들입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그리고 피라미드를 생각해 보십시오. 페하 이집트에 가보신 일이 있습니까? - 중 략 -
(이후는 피라미드에 대한 비텔리우스와 클라우디우스의 다른 의견차에 대한 논쟁이 펼져집니다. 클라우디우스는 피라미드처럼 황제 개인의 영광을 위한 대규모 공공사업은 진정한 공공사업이나 기념물이 아니라고 하지요)

"저기 보이나? 저것이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기념물이지.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의 제정이 손을 대고 수리도 했으나, 처음에는 바로 자유민들에 의해 시작된 것일세. 나는 저것이야말로 피라미드만큼이나 영원하면서, 인류를 위한 위대한 봉사로 평가되리라 생각하네."

"무얼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황궁을 가르키시는 겁니까"

"아파아 가도를 말하는거네"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 가도는 내 위대한 선조이신 장님 클라우디우스 감찰관이 착공했어. 로마의 가도는 고귀하고도 개방적인 인간들이 세운 위대한 기념물로 자유를 상징하제. 가도는 산을 넘고 늪을 지나고 강을 건너지. 가도는 넓고 곧고 또 단단해. 그래서 도시와 도시를 잇고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지. 길은 수만 킬로미터로 연전되었고 또 고마운 여행자들이 그 갈래를 쳐 낙나다네" - 411~414P
클라우디우스는 공공사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욱 안정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는 사시사철 안정적인 옥수수 공급을 위해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항을 사계절 내내 쓸수있도록 대규모 항만 공사를 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 '클라우디우스 수도교'를 비롯한 아니오 수도교. 이 두개의 거대한 수도교 공사를 통해 그는 이 책의 서두에 나온 쿠마이의 시벨레 무녀의 예언처럼 "겨울에도 로마에 빵과 물을 준다"는 것을 실현하죠.

2권에서 시작된 그의 치세가 본격적으로 이어질 3권도 많이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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