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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new/beijing/read.nhn?ctg=photoNews&oid=307&aid=0000000045

영화를 좋아한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보다는 ‘와이키키 브라더스’같은 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불편하지만 그 현실을 이길 용기 혹은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지난 7월초에 있었던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은 종합선물세트였다. 허나 하루 종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시작부터 끝까지 눈길을 단 한 차례도 돌릴 수 없었던 작품이 있었다. ‘머더볼’.

머더볼(murderball). 끔찍한 제목에 놀라 무슨 뜻인가 했더니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하는 놀이 이름인가보다. 굳이 우리식으로 따진다면 오재미 정도. 대신 피할 수 없으니 미국의 꼬마들에게 머더볼이란 ‘위험하고 거친’ 놀이 정도 되는 모양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종목은 휠체어 럭비. 휘모리로 몰아치는 이야기들이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이면 제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 겉핥기는 이쯤에서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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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주팬(Mark Jupan). 이 남자는 에너지가 넘치는 열혈청년이지만 만취한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조 소레스(Joe Soares)는 미국의 휠체어럭비팀 감독이었다가 미국의 숙적인 캐나다 감독으로 옮겨간다. 물론 둘 다 장애인이고 휠체어럭비에 인생을 건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심인물일 뿐 주인공은 아니다.

이야기는 미국의 한 체육관에서 마크 주팬의 훈련 및 경기장면부터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 미국과 캐나다의 휠체어럭비 결승전까지 다룬다. 시간적으로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이 시간 속에서 카메라는 이들의 열정과 땀은 물론, 희망과 분노가 엇갈리고 사랑을 나누는 일상의 모습들을 담는다.

재활과 훈련의 기간, 절망과 눈물이 없었을 리 없지만, 영화는 휴먼스토리에 가까운 감상적인 요소들을 발라냈다.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는 듯한 태도를 버리고 과감히 인물들을 비추고 표정을 읽어낸다. 게다가 비장애인의 높은 시선이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눈높이에 고정되어 메탈 음악과 함께 역동성을 더한다.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책과 달리 아껴볼 수도 없어 온 정신을 쏟았고, ‘머더볼’은 그렇게 끝났다. 나의 시선을 붙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격렬하게 부딪히는 휠체어만도 아니고 인물들의 넘치는 에너지만도 아니었다.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땀으로 절은 경기장을 벗어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술을 들이키고, 연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사고를 낸 친구를 증오하고 멀리하다 수많은 감정의 기복을 거쳐 화해하고.

그 후 두 달의 시간이 흘렀고 울산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보았다. 글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열망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음을 스스로 느낀다.

얼마 전, 제78회 아카데미상 후보작들이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 반가운 이름 ‘머더볼’이 눈에 띄었다. 다큐멘터리 부문이다. 물론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과 편집부문 특별심사위원상을 받아 관객 입장에서 더 이상 상 욕심이 나진 않지만, 이번 상까지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한 번이라도 볼 기회가 늘어날 테니까.

그나저나, 마크 주팬과 조 소레스는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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