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new/beijing/read.nhn?ctg=photoNews&oid=307&aid=0000000046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가 갑자기 문자를 보내왔다. “'내 곁에 있어 줘' 봤니? 올해 내가 본 최고의 영화다.”

문자를 받고서야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다. 예술영화전용극장에서 조용히 관객과 만나고 있었던 이 영화를 나는 조바심을 치며 만나야 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인터넷 예매분은 벌써 동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얻은 구석 자리에 앉아 침묵 속 상처들을 대면한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랑이 주는 슬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세 사람이 있다. 아내를 잃고 쓸쓸히 구멍가게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노인. 혼자 눈 뜨는 아침, 또다시 견뎌야 할 하루의 시간이 버거워 보인다.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그 순간만이 유일한 낙이다. 가족에게조차 밥버러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설 경비원. 못 생기고 뚱뚱한 그에게는 먹고 자는 것 말고는 낙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CCTV에 비춰진 아름답고 지적인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 그는 꽃무늬 편지지를 앞에 두고 밤마다 괴로워한다. 글로 표현되어지지 않은 채 온통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사랑이라는 그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채팅으로 만난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 한 소녀가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반짝거리던 사랑은 어느새 빛을 잃고 여학생은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 연인에게 집착하고 애원하다 절망에 침몰되어버리는 실연의 시간들. 결국 소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사랑이 주는 슬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 세 사람은 서로 고립된 채 보일 뿐이다. 그리고 세 사람을 감싸 안는 실존인물 테레사 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명으로 출연하는 테레사 첸 여사는 열네 살에 청력과 시력을 모두 잃었다. 노인과 소녀와 경비원의 고통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테레사 챈은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웠던 과거의 시간들과 혼자서 요리와 식사를 하며 비슷한 처지의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일상을 조용히 보여준다.

테레사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영화 중간 중간 타자기가 쳐대던 문장들은 힘을 갖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은 존재한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처럼 언뜻 진부해 보이는 이 문장들은 노인과 경비병과 소녀 사이를 부유하다가 테레사와 함께 비로소 자리를 잡아간다. 테레사의 장애 또한 위인전 속의 그것에서 현실의 고통으로 자리를 잡는다.

맹인학교 교장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테레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헬렌 켈러를 연상시키며 화석화되는 듯하지만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그녀의 일상-요리와 설거지와 식사를 하는 그 긴긴 시간들-은 헬렌 켈러의, 그리고 테레사의 시간들을 대리체험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위인전 속의 인물로서가 아니라 또한 장애를 극복한 성공한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녀가 대면했을 그 어둠과 절망의 시간들을 관객이 공감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지 자막일 뿐이라서 절대로 감정이 묻어나지 않음에도 테레사의 발언들은 점점 관객들의 마음에 파고든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할 만큼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원망과 ‘세상과 나 사이에는 깨뜨릴 수 없는 벽이 놓여 있다’는 테레사의 발언들은 그녀가 건너왔을 시간의 강이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네 사람이 소녀의 자살시도로 우연히 연결되는 순간, 그 만남은 관객에게 기적과도 같은 감동을 던져준다. 대사가 거의 없는 채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메신저, 자막으로만 조용조용히 등장인물들의 쓸쓸함을 묘사해 왔던 영화는 마지막 순간, 눈물이 솟을 정도의 감정폭발을 이끌어낸다.

사랑의 끝에서 죽음을 선택한 소녀와 완성된 편지로 사랑의 시작을 꿈꾸는 경비원은 우연한 충돌로 뒤바뀐 운명을 부여받는다. 우연이란 얼마나 잔인한가를 탄식하는 동안 영화는 또 다른 우연을 보여준다. 갑작스레 대면한 테레사 앞에서 노인은 마음껏 눈물을 흘린다. 주름의 깊이만큼 늙어버린 몸, 내내 어떤 표정도 보여주지 않던 노인은 얼굴이 흠뻑 젖을 만큼 눈물을 흘린다. 노인이 죽은 아내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관객 또한 어쩔 수 없이 펑펑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어떤 놀람이나 서두름 없이, 전혀 주저하지 않으며 테레사는 눈물 흘리는 노인을 조용히 안아준다. 그것이 이 영화의 태도이다. 삶이란 모퉁이 길을 걷는 것처럼 예기치 않은 우연들로 우리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때론 무자비하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라는 거다.

그 길 어디쯤에서 이렇게 내미는 손길들이 있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슬픔도 힘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이다. 테레사가 노인을 끌어안는 순간, 침묵이 고통을 끌어안는 그 순간, 영화는 진심을 다해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그 따뜻한 손길을 마주잡는 순간, 당신은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꼭 권하고 싶다.

글을 모두 옮긴 후에 보니 이 영화에서 장애인 체육 관련 내용은 어디에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