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 한두 가지 지니지 않은 물건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연탄만큼 많은 미덕과 교훈을 보여주는 물건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엄청난 세월을 수천 길 땅속에서 갇혀 지내다 세상에 나오기 무섭게 제 몸을 태워야 하는 그 삶은 가히 성인의 생애를 닮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연탄은 희생과 겸양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렇게 소중한 운명을 타고 나서도, 연탄은 그 누구한테도 잰 체하거나 비싸게 굴지 않습니다. 거지아이의 동전 몇 개에도 제 몸을 내줍니다."

- 윤준호 지음 『20세기 브랜드에 관한 명상』 中

고등학교에 다닐때까지만 해도 저녁이면 연탄을 갈기 위해 보일러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다 탄 연탄을 끄집어내고 살아있는 연탄을 아래로 내리고 새 연탄을 그 위로 올리고....그리고는 얇은 철판위에 고구마 몇 개를 올려두고는 뚜껑을 닫았던 기억. 불과 20년도 안된 일인데, 아득하게 멀어져 이제 일상에서 연탄보기란 정말 드물다. 그때는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너나할것 없이 다 탄 연탄을 거리에 뿌리며 이웃 어른들과 인사를 했었고...어머니는 아주 추운 밤이 지난 아침이면 난곡에 살던 외할머니댁에 전화해서 밤새 안녕히 주무셨는지 확인하곤 했다. '연탄가스'가 제일 무서운 사고인 것으로 알고 살았던 그런 시절...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


P.S. 검색하다 찾은 재미있는 연탄이미지들^^ 귀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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