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뭐길래?

(초략)………………

토튼햄 핫스퍼 FC의 서포터이자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앤서니 기든스는 사랑을 열정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 그리고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으로 구분했다.

열정적 사랑이란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이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이 곧 열정적 사랑이다. 과학자들은 열정적 사랑을 뇌의 화학 작용으로 보고 있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에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만들어져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페닐에틸아민이 만들어져 천연각성제 구실을 해서 열정이 분출되고, 그 다음에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성적 충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사랑에 빠지면 현실감이 사라지기도 한다. 앞뒤를 가지지 않는 만큼 파괴적인 속성도 지니고 있다. 어떤 희생이나 극단적 선택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래서 오래 가지 못한다. 신체에 병균이 칩입하면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신체가 스스로 균형을 찾으려 하듯이 사랑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힌강 행동 심리학자 신디 하잔은 37개 문화권이 5천여명을 관찰한 결과 사랑의 지속 시간은 대략 30개월 미만이라고 발표했다.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요소를 지닌 열정적 사랑은 오랫동안 반사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사랑과 무관하게 결혼이 이루어졌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열정적 사랑이란 결혼의 위험 요소였다. 서구의 경우 18세기 전가지 귀족 계층에게 결혼이란 지위와 재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고 평민층에서도 경제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였다. 사랑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결혼 바깥의 상대, 곧 불륜 상대였다.(이 경우 사랑이란 눈물의 씨앗일 수밖에 없다. 불륜이잖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 운명적으로 두 사람이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낭만적 사랑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유명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같은 사고는 낭만적 사랑의 핵심이다.

열정적 사랑이 성적 매혹과 불가분의 관계인 반면 낭만적 사랑은 정신적인 것, 영혼의 만남에 우위를 둔다. 이는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의 신에 대한 숭고한 사랑에 열정적 사랑이 더해진 것이다.

왜 하필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낭만적 사랑에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니까. 낭만적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은 자신의 결여를 메워 주는 존재이다.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18세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터와 가정이 분리되었고 개인주의가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사랑은 결혼과 결합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 친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개인이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자에게 이상적인 배우자란 일터와 분리된 가정을 잘 돌볼 수 있는 여자였다. 이전에 불륜으로 치부된 사랑은 낭만적 사랑이 부상하면서도 결혼 제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사랑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이 경우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이 실제로 영원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결과, 기든스의 지적처럼 "종종 오랜 불행의 나날이 초래되었다." 결국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속성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서로의 차이점이나 갈등의 요인들이 간과되고 축소된다. 낭만적 사랑의 관점에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차이점이나 갈등이 있다 해도 소소한 것이거나 소소한 것이어야 한다. 그 결과는? 갈등이 커질수록 상대방이 진정한 영혼의 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며 결국 관계는 깨지게 된다.


합류적 사랑이란, 기든스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타자에게 열어 보이는 것"이다. 즉 서로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의 유대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합류적 사랑이다.

동물원은 '주체'와 '타자'와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했던 우리. 나의 너, 너의 나, 나의 나, 너의 너.
  항상 그렇게 넷이서 만났지.
  사랑했던 우리.
  서로의 눈빛에 비춰진 서로의 모습 속에서 서로를 찾았지.
  (…)
  잊지 못할 그날. 나는 너, 너는 나 였었지.
  그렇게 쉽게 떠나갔던 우리
  (…)
  이렇게 생각해. 나는 나, 너는 너였다고. 나는 나, 너는 너

- 「나는 나 너는 너」, 『동물원 세번째 노래 모음』, 1990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나라는, 또는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사랑이며, 나는 나이고 너는 너임을 확인할 때 사랑이 깨진다는 관점이 낭만적 사랑이다. 이에 반해 합류적 사랑에서는 나는 나이고 너는 너임을 확인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낭만적 사랑의 속성인 '영원'과 '유일'의 허구성은 합류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사랑의 행태를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에서는 바로 그 특별한 '사람'이 중요하지만 합류적 사랑에서는 그 사람과의 특별한 '관계'가 더 중요하다.

기든스는 이렇게 말한다. "낭만적 사랑과는 달리 합류적 사랑은 이성애여야 할 필요도 없고 반드시 일부일처제여야 할 필요도 없다."



이 구절 역시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이여서 발췌했다.
이제 한 부분 정도만 더 보태면 세세한 내용은 아니여도 핵심은 잡힐 듯...

고대부터 18세기까지가 열정적 사랑도 낭만적 사랑도 아닌
본능적이고 생존을 위한 것이 결혼이고 사랑은 별개인 그런 사회였다면,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우리의 뇌속에
가치관과 윤리로서 자리잡고 있는 사랑과 결혼의 개념이 불과 2백년전부터
이 사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요즘같은 사회 변화 속도안에서
어쩌면 우리 다음세대는 낭만적 사랑이 아닌
합류적 사랑이 대세이고
사회적 가치관의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더 나이먹고 늙어
내 자식들의 가치관이 만약 이 소설의 내용과 같이 구성된다면,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수 있을까?

지금은 이성적으로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고,
그래서 내 가치관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연다 할지라도...
그 일이 내 앞에서 펼져진다면 그때는 좌뇌보다는 우뇌가 먼저 용솟음 칠터...
슬쩍 작은 상상만으로도 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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