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엔캐스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영상.
동영상을 보고 한참을 자료들을 뒤적거려 겨우 언제적 영상인지 찾아냈다.

농구대잔치의 막바지였던 95~96시즌 챔피언 결정전 3차전.
이미 1,2차전을 기아에 내주며 벼랑끝으로 밀려나던 상무가
3차전 경기 초반 월등하게 앞서가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다.

농구대잔치는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이전 실업팀과 대학팀이 모두 참가했던 대회다.
(물론 지금도 매년 한다. 순수 아마추어 대회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회를 통해 이충희, 김현준, 김유택, 허재, 이상민 등 스타들이 대중화되었다.

80년대 중반 이후는 실업팀인 이충희의 현대, 김현준의 삼성과
허재와 김유택이 이끄는 중앙대의 3파전이었다.
이후 중앙대 출신의 한기범, 김유택이 기아자동차의 창단과 함께 입단하고
곧 이어 허재가 입단하면서 기아자동차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당시 기아자동차의 베스트 5는 한기범-김유택-허재-강정수-유재학.
이충희화 김현준은 이미 30대를 넘어선 노장들이었고
팔팔한 20대를 주축으로 한 기아자동차는 농구대잔치를 휩쓸다시피 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정재근, 오성식, 문경은 을 주축으로 하던 연세대학교에
91년 이상민이 입학하면서 기아자동차를 확실하게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그리고는 93년 서장훈의 입학으로 센터진을 보강한 연세대학교는
정규시즌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아자동차의 독주를 막았다.
연세대학교는 이듬해에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연세대의 이러한 흐름에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은 것은 고려대학교.
94년 현주엽과 신기성의 입학과 동시에 기존의 전희철-김병철 등과 호흡을 맞춘 고려대학교는
그 해 정규시즌 2위에 올랐고 다음해인 95~96시즌에는 정규시즌 우승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시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것은 상무.
바로 이 동영상의 배경이다.

95~96년 챔피언 결정전 당시 기아는 은퇴를 앞두고 있던 한기범과 김유택의 트윈타워.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허재.
(동영상 막판에 보면 인사이드에서 김유택 뒤에 있던 허재가 갑자기 외곽으로 빠져나오면서
이훈재의 어시스트와 스크린을 이용해 3점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정말 압권이다.)
이상민보다 한수 앞선 실력을 보이던 강동희.
그리고 중앙대를 졸업하자마자 기아에 입단했던 당시 막내 김영만.
어디 하나 셀 구멍을 찾기 힘든 라인업이었다.

이에 맞서는 상무는 아직은 덜 익은 이상민과 울퉁불퉁 기복이 심했던 문경은.
기아시절 한기범-김유택에 가려 늘 백업 센터였던 조동기.
역시 강동희의 그늘에 가려 그의 졸업이후 중앙대 주전 포인트 가드를 맡앗던 김승기.
그리고 고대-연대-중앙대의 학벌싸움에서 유일하게 독야청청했던 조성원등이 베스트 멤버였다.


이제는 프로농구가 가득한 농구코트에서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게 아쉽다.
(그래도 아직 프로농구판에 많이 남아있는건가?)
왜인지...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프로농구보다 예전의 농구대잔치가 그립다.
가끔은 코트에서 맹렬하게 몸싸움도 벌이던 모습도 그립고...
그 무엇보다 관중과 오빠부대로 가득한 경기장 안의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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