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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sports/new/beijing/read.nhn?ctg=photoNews&oid=307&aid=0000000050

불혹이라는 나이 마흔, 하지만 지능은 6살 수준인 한 남자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자 '모자란 놈'으로 치부되었지만, 누구보다 가슴이 따스한,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엄기봉이다. 기봉씨의 따스한 가슴에 용기를 심어준 것은 마라톤, 엄밀히 말하면 달음박질이다.

2003년 2월 11일,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5부작 다큐멘터리 ‘맨발의 기봉 씨’가 처음 방송되었다. 방송은 당시 나이 마흔의 엄기봉 씨가 팔순의 노모와 둘이 살면서 달리기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결국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을 참 따스하게 보여주었다. 이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만들어졌고, 책도 씌여졌다.

기봉 씨가 맨발로 동네를 달음박질치며 달리고 있다. 이장님인 엄기양 씨는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기봉 씨를 따라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기봉 씨와 이장님을 두고 쑥덕거린다.

“암 것도 모르는 놈을, 저런 바보를 데리고 마라톤은 무슨…”

그들이라고 해서 기봉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라톤이란 아무런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조차도 오랜 시간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쉽게 시킬 수 있는 기봉 씨의 일손이 아쉬운 탓도 있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하지만 기봉 씨의 달리기는 계속 된다. 동네 청년들이 일부러 술을 먹이고, 새총으로 잔돌을 쏴대도 기봉 씨는 계속 달린다. 숨이 가쁘고 때로 견디기 힘든 통증이 가슴에 치밀어도(다큐멘터리에서 내시경 촬영 결과 혹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했지만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이장님이 작심을 하고 기봉이에게 달리기를 포기하도록 만들고자 해도, 기봉이는 달린다. 달리기를 잘하니까, 달리면 즐거우니까, 잘해서 상금 받으면 어머니 틀니를 해드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봉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달리기인데, 마라톤대회에서 꼭 1등을, 상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참에 서울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쐬고 맛난 것도 먹으면 되는데 그냥 달리면 되는 거지.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은 기봉 씨다. 계산이 아닌 가슴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삶을 살아가는 기봉 씨의 태도다.

여기 내 앞에 한 사람이 서있다. 생긴 것도 좀 모자라게 생겼고, 말도 또박또박 하지 못하며, 생각도 성숙하지 못하다. 뭐든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그 결과는 늘 실망스럽다. 뭔가 일을 맡기기에는 망설여진다. 물론 이 사람이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것이 동네사람들이 기봉 씨를 대하는 태도였을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동정이라 한다.

김수연 시인의 <마음사전>은 동정과 연민이 갖는 감정의 결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끼지만,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마음사전>, 66쪽). 요컨대 이질감과 동질감의 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봉 씨에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연민이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는 평행선을 그리며 간다. 다만 영화에는 극적 재미를 위해서 이장님의 아들이 등장해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사진관의 아가씨가 기봉 씨를 향해 따스한 눈길을 던지지만, 대체적인 얼개는 같다. 아, 다큐멘터리에서 기봉 씨가 3157번 번호를 달고 참가한 마라톤 대회는 전국아마추어마라톤협회가 주관한 대회로 2,500여 명의 대회 참가자 가운데 기봉 씨는 170위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기봉 씨의 후원금 문제를 두고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후일담이 있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봉 씨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문제였다. 지금, 기봉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방송과 영화 이후로 전해지는 곁가지 이야기들을 치고 나면 지적장애와 지체장애 중복 장애인인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남는다. 삶을 머리나 입이 아닌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엄기봉 씨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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