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락정토로 가는 길은 하품하생, 중품중생, 상품상생의 아홉단계 성품과 행실로 나뉘는데, 수행을 통해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오르면 극락정토에 다다를 수 있다 한다. 천왕문에서부터 하품하생이 시작되어, 범종루는 중품중생, 안양루가 상품상생이고 무량수전이 바로 극락정토의 세상이란다. - 봉황산 부석사 중
◆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넌다. 어떤 상념도 욕심도 없다. 평정심이다. 세심과 개심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한 배려다. 사진 동호회 회원인 듯한 사람들이 한 줄로 따라온다. 안항이다. 스님들은 여럿이 움직일 때 보통 한 줄로 걸어간다. 기러기가 줄맞춰 날아가는 것처럼. 그래서 안항이라고 한다. 함께 가도 혼자라는 것을 가리친다. 걸음걸이도 수행인 셈이다. 저절로 안항을 배운다. - 상왕산 개심사 중
◆ 예전에는 꽃사태가 나도 고즈넉한 절집이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이래저래 소문이 나 꽃철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수선해졌다. 주말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롯하게 꽃비를 맞고 개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평일이나 새벽에 찾아야 한다. 아쉬움이 발끝에 줄줄이 묻어나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난다. 야단법석이다. 드디어 단체손님들이 나타났다. 얼른 도망쳐야겠다. 저리 몰려다니면 절맛을 알까? 하긴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사찰의 야외 법회를 뜻하는 말이니 그리 차박할 상황은 아닌 듯 싶다. - 상왕산 개심사 중
◆ 남명 스님이 말하는 영산홍은 칠전선원 문 옆에 있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 팔상전, 원통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칠전선원이다.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영산홍이고 하나는 자산홍이다 6백 년이나 되었다 한다. 그런데 선암사의 꽃은 영산홍보다 매화꽃이 더 유명하다. 3월이면 무우전과 칠전선원 사이의 매화터널이 장관이다. 원통전 뒤 매화도 6백 년 묵었다 해서 유명하다. - 조계산 선암사 중
◆ 대미산에서 뻗어 내려오던 산줄기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다 그만 구름에 닿고 말았다는 운달산. 해발 천 미터 정도의 높지 않은 산인데 울창한 숲은 원시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가 서로 나이 자랑하느라 하늘 찌를 줄 모르고, 식구 자랑하느라 햇빛 가리는 줄 모른다. 숲이 실하면 물도 건강하다. 숲이 깊으면 물도 깊다. 김룡사 가는 길은 나무 그늘 따라 사람길, 물길이 여유롭다. 운달 계곡의 속 깊은 물은 소리도 깊고 차다. 그래서 사람들은 냉골이라 부른다. 김룡사 숲이 이렇게 아름다운 데는 이유가 있다. 향탄봉산이라 그렇다. 왕실에서 쓰는 숯을 만드는 산이다. 조선시대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산의 소유권을 김룡사에 주어 관리해 왔다. 나무꾼도 선녀도 속상할 일이지만 그 덕에 원시림 같은 산림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운달산 김룡사 중
◆ 백의관음은 어떤 책에 실린 사진을 통해 처음 만났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 할 수 있을까? 다리는 짧고 머리는 크고 전체적인 비례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옷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그림이었다. 명작이라고 한 이들을 타박했다. 우리 것은 다 좋은 거라고 목청 높이는 문화적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몇년 전의 일이다. 무위사에 와서 백의관음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서, 너무 놀라서 달아나고 싶었다. 도판 사진과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일까? 백의관음도는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멀리서 벽화를 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 벽화 바로 밑에서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다. 백의관음도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보라. 살아 움직이는 백의관음을 친견할 수 있다. 그림뿐만이 아니다. 우리 절집의 부처상들도 조형적으로 보면 가분수처럼 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정상적인 비례로 보인다. 나를 낮추면 낮출수록 아름다운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절을 하며 올려다보는 부처님이 제일 아름답다. 스스로를 낮추면 아름다운 세상이다. - 월출산 무위사 중
어제에 이어 '곱게 늙은 절집'에서 발췌한 내용들. 이 책 두번째 장은 '해우소'를 테마로 엮여져있습니다. 비워내기가 좋은 절집들을 소개하고 있죠. 말이 쉽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비워내는 일 같군요. 마지막에 소개된 백의관음도 안의 비밀도 재미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면 낮출수록 아름다운 세상이랍니다.
◆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넌다. 어떤 상념도 욕심도 없다. 평정심이다. 세심과 개심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한 배려다. 사진 동호회 회원인 듯한 사람들이 한 줄로 따라온다. 안항이다. 스님들은 여럿이 움직일 때 보통 한 줄로 걸어간다. 기러기가 줄맞춰 날아가는 것처럼. 그래서 안항이라고 한다. 함께 가도 혼자라는 것을 가리친다. 걸음걸이도 수행인 셈이다. 저절로 안항을 배운다. - 상왕산 개심사 중
◆ 예전에는 꽃사태가 나도 고즈넉한 절집이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이래저래 소문이 나 꽃철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수선해졌다. 주말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롯하게 꽃비를 맞고 개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평일이나 새벽에 찾아야 한다. 아쉬움이 발끝에 줄줄이 묻어나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난다. 야단법석이다. 드디어 단체손님들이 나타났다. 얼른 도망쳐야겠다. 저리 몰려다니면 절맛을 알까? 하긴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사찰의 야외 법회를 뜻하는 말이니 그리 차박할 상황은 아닌 듯 싶다. - 상왕산 개심사 중
◆ 남명 스님이 말하는 영산홍은 칠전선원 문 옆에 있다. 대웅전 뒤로 올라가 팔상전, 원통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칠전선원이다. 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영산홍이고 하나는 자산홍이다 6백 년이나 되었다 한다. 그런데 선암사의 꽃은 영산홍보다 매화꽃이 더 유명하다. 3월이면 무우전과 칠전선원 사이의 매화터널이 장관이다. 원통전 뒤 매화도 6백 년 묵었다 해서 유명하다. - 조계산 선암사 중
◆ 대미산에서 뻗어 내려오던 산줄기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다 그만 구름에 닿고 말았다는 운달산. 해발 천 미터 정도의 높지 않은 산인데 울창한 숲은 원시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가 서로 나이 자랑하느라 하늘 찌를 줄 모르고, 식구 자랑하느라 햇빛 가리는 줄 모른다. 숲이 실하면 물도 건강하다. 숲이 깊으면 물도 깊다. 김룡사 가는 길은 나무 그늘 따라 사람길, 물길이 여유롭다. 운달 계곡의 속 깊은 물은 소리도 깊고 차다. 그래서 사람들은 냉골이라 부른다. 김룡사 숲이 이렇게 아름다운 데는 이유가 있다. 향탄봉산이라 그렇다. 왕실에서 쓰는 숯을 만드는 산이다. 조선시대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산의 소유권을 김룡사에 주어 관리해 왔다. 나무꾼도 선녀도 속상할 일이지만 그 덕에 원시림 같은 산림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운달산 김룡사 중
◆ 백의관음은 어떤 책에 실린 사진을 통해 처음 만났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 할 수 있을까? 다리는 짧고 머리는 크고 전체적인 비례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옷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그림이었다. 명작이라고 한 이들을 타박했다. 우리 것은 다 좋은 거라고 목청 높이는 문화적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몇년 전의 일이다. 무위사에 와서 백의관음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서, 너무 놀라서 달아나고 싶었다. 도판 사진과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일까? 백의관음도는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멀리서 벽화를 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 벽화 바로 밑에서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다. 백의관음도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보라. 살아 움직이는 백의관음을 친견할 수 있다. 그림뿐만이 아니다. 우리 절집의 부처상들도 조형적으로 보면 가분수처럼 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정상적인 비례로 보인다. 나를 낮추면 낮출수록 아름다운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절을 하며 올려다보는 부처님이 제일 아름답다. 스스로를 낮추면 아름다운 세상이다. - 월출산 무위사 중
어제에 이어 '곱게 늙은 절집'에서 발췌한 내용들. 이 책 두번째 장은 '해우소'를 테마로 엮여져있습니다. 비워내기가 좋은 절집들을 소개하고 있죠. 말이 쉽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비워내는 일 같군요. 마지막에 소개된 백의관음도 안의 비밀도 재미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면 낮출수록 아름다운 세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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