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지 여행을 하고 지금은 재난 현장에서 일해서인지, 가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겠어요?"

왜 나라고 무서운 것이 없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헛된 이름, 허명이 나는 일이다. 평가절하도 물론 싫지만 지금의 나 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제일 무섭다. 나의 실체와 남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실제로는 오이인데 사람들이 수박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길쭉한 오이는 남 앞에 설 때마다 크고 동그랗게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쓸 것이고, 있지도 않은 줄무늬까지 그려넣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빈틈없이 변장을 했으면서도 자기가 오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 기껏해야 백 년인 인생인데 그렇게 남이 정해놓은 허상에 자기를 맞추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말이다.

나는 아무리 수박 노릇이 근사하고 대접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짜 수박보다는 진짜 오이가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치기, 함량 미달, 헛 이름이 난 수박보다 진국, 오리지널, 이름값 하는 오이가 훨씬 자유롭고 떳떳할 테니까. 그래야 제 맛을 내면서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씩 커가는 과정을 스스로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가짜배기 수박이고 싶은가, 진짜배기 오이이고 싶은가?


긴급구조요원으로 세계 각국의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는 사회봉사가라는 위치에 있는 젊은 지도자라 할지라도, 이처럼 말하는게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비관적인 혹자는 이것마저도 가식이고, 말뿐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본 사람이라면...그리고 지난 5년 동안 한비야씨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 책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낀 사람이라면...이 말이 절대 가식이 아님을 알 것이다. 평가절하보다 허명을 더 싫어하고 오이가 되고 싶다는 그녀. 아름다운 사람이다.

P.S.1
"물이 끓는 100도와 그렇지 않은 99도.
단 1도 차이지만 바로 그 1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
그러니 한 발짝만 더 가면 100도가 되는데 99도에서 멈출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지"
- 본문중에서 발췌

근래 회사 이사님이 사적으로 나에게 자주 하는 멘트
'웹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말야...
명품이랑 졸작의 차이는 절대 크지 않다.
크다고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는게 더 나쁘다.
우리의 일은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고,
절대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순간의 방심과 자만이 졸작을 만든다.
늘 사용자를 생각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판단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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