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아가씨는 달리고 있었다.
아가씨 뒤에 귀신이 쫒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뛰면서 머리빗을 뽑아 던졌다.
빗은 귀신 앞에 험준한 산이 되었다.
귀신은 그 산 뒤에 가리워졌다.
그 사이에 아가씨는 멀리 달아났다.
 
이윽고 산꼭대기에서 귀신이 달려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아가씨는 따라 잡히게 되었다.
아가씨는 허리에 찬 주머니를 풀어 던졌다.
주머니는 연꽃이 피어 있는 못이 되었다.
귀신은 그 건너편에서 흙탕물에 빠지며 힘들게 건너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가씨는 다시 귀신을 멀리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은 다시 따라왔다.
아가씨는 이번에는 한 쪽 신발을 벗어 던졌다.
신발은 귀신 코에 맞고 거꾸로 떨어져 낭떠러지로 변했다.
귀신은 투덜거리며 조심조심 낭떠러지를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사이에 그녀는 조금 달아났다.
 
끈질기게 귀신은 다시 아가씨를 따라 잡으려 했다.
아가씨는 저고리의 푸른 고름을 뜯어 던졌다.
그것은 큰 강이 되었다.
귀신이 뗏목을 찾는 사이에 아가씨는 다시 조금 더 달아났다."
 
이야기 도중에 어르신네가 찾았다.
한씨는 긴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는 서둘러 사랑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서른해가 지났다 (중략)
 
그런데 오늘도 국토 어디에선가 아가씨는 달리고 있다.
몸에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벌거숭이로 외치면서 달리고 있다.
귀신은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려 한다.
 
어느 해에 가장 불행한 순간,
그녀는 마지막부분을 가린 천조각을 던지고 슬프게 땅에 엎드렸다.
 
천 조각은 바람에 펄럭이며 가까운 강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물이 되었다.
기슭에 넘쳐 뚝을 무너뜨리고 홍수가 되어 들을 메꾸었다. 배추밭을 메꾸었다.
소와 말을 메꾸고 유교의 애곡소리 서린 무덤을 메꾸었다.
무수한 인가는 물위에 떠 표류하고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 세상에 결별을 고하는 손들을 싣고 바다로 흘러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영만 화백이 그리고 김세영님이 쓰신 '사랑해' 개정판 6권에 소개된 시.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산문체지만 시가 맞답니다.
(책을 보고 다 쳐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는데...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madpen10/80016136511
에 올려진 것을 가져왓습니다)

이 시는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인데...
마루야마 카오루라는 일본사람이 지은 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의 제목은 '조선'입니다.
어린시절을 조선에서 보낸 시인이 1937년에 발표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늘 무엇인가에 쭃겨오기만 한 조선사람들을 보고 외국인인 일본인이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지 않을까요? 이 시를 접하는 순간 섬뜩한 기운과 함께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쫓김을 만들어가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더 사색하며, 조금은 더 느리게 살아가야 할 떄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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