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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책 읽기가 부진했던 한 해도 드물정도로 여전히 읽은 책을 손에 꼽기가 힘듭니다.

그 와중에 지난주에 죽 읽어내린 두 권의 소설
"바람의 화원". 잘 아시다시피 요즘 SBS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입니다.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 요즘 그나마 챙겨보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사실 챙겨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드라마를 제작사 대표께서 잘 아는 선배시죠. 그래서 이 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되기 훨씬 전 부터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들었던 친숙함이 즐겨보는 이유입니다.

어느새 드라마는 10회를 넘어서 절반 이상을 흘러갔습니다. 공교롭게도 책의 전개 속도와 거의 흡사합니다. 총 2권인 책에서도 1권 마무리에 한참 정조의 어진화사를 김홍도와 신윤복 두 화가가 그리고 있으니까요.

AnyWay~! 이 드라마를 둘러싸고 역사 왜곡이다! 청소년 교육에 좋지 않은 드라마라는 등 여러가지 논란들이 있더군요. 역사속 인물을 다룰 때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비난이며 논쟁거리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특히나 신윤복이라는 당대의 풍속화가를 여자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왜곡의 범주가 크다는 비판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박신양의 연기가 이전 드라마 캐릭터와 달라진게 없다라는 배우에 대한 비판까지 얹어져 초기에 자리잡는 데 조금은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인기도의 기준인 시청률에서 동 시간대의 다른 방송국 드라마에 비해 여전히 고전을 하고 있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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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다 읽고 드라마를 다시 볼때마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다 싶은 한가지는 신윤복 역할을 맡고 있는 문근영이라는 배우입니다. 다행인 이유는 이 여배우가 드라마에 캐스팅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금을 알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었는데 주위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낼만큼 신윤복 역할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죠. 문근영이 맡기에는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의견도 있었던게 사실이라서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1회 방송 직후부터 "성장압박을 떨쳐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제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은 신윤복이라는 인물이 문근영이라는 배우로 커버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는 것이죠. 이 부분에서 책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가 발생하는데요...사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신윤복이 여자라는 사실을 문근영을 캐스팅함으로써 만천하에 밝히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책은 드라마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절반을 훌쩍 읽고나서야 '아! 신윤복이 여자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책이라는 장르와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쩔수없는 부분이지만, 사실 저는 이 시점에서 엉뚱한 상상을 했습니다. 한때 일란성 쌍둥이 댄스가수로 무대에 올랐던 "량현량하"와 같은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 말이죠. 물론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책의 재미를 어쩔수 없이 반감시키는 드라마의 구성을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기는 싫더군요.

이 부분 말고도 책과 드라마가 다른 부분은 몇 군데 더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영조가 승하하면서 정조에게 사도세자의 어진에 대한 비밀을 밝히며 영조 본인이 대화원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시켰다고 나오지만 책에서는 정조 본인이 평소 따르던 대화원에게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정순황후의 역할에 대해서는 책보다 드라마에서 더 많이 부각된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이산에서 만큼은 아니더라도 계속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그외에도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아직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모두 펼쳐내지 않은 상태이니 이쯤에서 드라마 이야기는 접고! 쌩뚱맞게~ 주제곡을 한번 들어보시죠^^ ㅋㅋ


그럼! 이제 본론?
이 드라마 혹은 소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나친 역사 왜곡일까요? 아니면 가정은 없다라는 역사에서 '어쩌면~' 이라는 가정에 불과할까요?

제 생각을 먼저 밝히자면 후자쪽에 가깝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신윤복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조차 나오지 않고 김홍도의 기록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와 관련된 모든 역사서에서 신윤복에 대해 나오는 이야기는...

1928년 오세창(1864~1953)이 쓴 『근역서화징』에 나오는 두 줄이 유일무이합니다. 그 내용인즉 "신윤복. 자 입보. 호 혜원. 고령인. 부친은 첨사 신한평.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부친 신한평은 화원이었다"이죠.

이렇게 두 줄에 불과한 기록을 놓고 조선시대에 여자는 화가를 할 수 없다. 조선시대 도화서에서는 부자가 같은 시기에 일할 수 없었다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엄청난 왜곡인 것 처럼 몰아붙이는 것도 사실 납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그런 제약을 논하기 보다는 가능성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고 같이 고민해볼 계기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 하겠지요.

실제 소설에 이어 드라마까지 나오고 같은 소재의 영화까지 개봉을 하면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 미술관의 전시회는 두 시간 동안 줄을 서야 작품을 볼 수 있고, 인터넷 곳곳에서 저 처럼 조선 후기 두 화원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글들이 많아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행여 지금 드라마를 보면서 '신윤복이 여자였다는데...'라고 말할 어린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인지력이 제대로 형성되었을때 그건 드라마고 소설의 이야기이고 사실을 다를 수도 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 말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역사왜곡일까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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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대표작인 미인도. 간송미술관에 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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