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는 풍경도 빠르게 사라진다. 사람 없어 한갓지고 배어난 비경 같은 것은 이제 없다. 그런 곳은 이미 이 땅에서 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그런 곳이 있다 하더라도 말 못 한다. 지난날 어리석어, 입 싸게 놀린 탓으로 별난 사람들 몰려들어서 망가진 몇 군데에 무거운 빚을, 갚을 길 없는 빚을 지고 있으므로..."
서문 중
오래동안 책장에 꽃혀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시간의 빛'이라는 제목에 강렬함을 느끼며 시선이 꽃히고 무의식중에 책장에 꽃아둔 기억뿐.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저 글·사진이 모두 그의 작품이려니 하는 생각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해 궁금해 검색하니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작가'란다.
그의 사진속에는 자연에 대해 너무 미안해 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에 올라가면 흔하게 보는 '자연보호'라는 간판을 그는 '사람은 자연을 보호할 수 없다'의 준말이라고 해석한다.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보호'하려 하지말고 해꼬지나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파괴하지 말자', '보호하자'라고 말을 돌리는 인간들은 자연앞에서 비겁하고 오만하단다.
근래 라디오에서 자주 듣는 공익 캠페인을 생각나게 한다.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당신에게 자연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는...
그의 글 한줄한줄에, 사진 한장에 자연에 얼마나 쉽게 그리고 무의식중에 이 땅을 더럽혔던가 하는 따가움이 마음속에서 아프게 한다.
"난초는 나약하지 않다. 준수하고 귀티나지만 잡초보다 더 강인하다. 남쪽의 여기저기 마른 비탈의 숲 가장자리에는 난초가 흔했으며, 이른 봄이면 그 향기가 퍼져나갔다. 흑산도에서는 배 타고 가면서도 풍란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을 모두 보기 힘들다. 빼어나게 향기 좋은 풍란과 잎이 아름다운 한란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고, 춘란은 보기 어렵다. 모두 다 그 향기와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뽑혀가 화분에서 얼마간 살다가 저세상으로 간 것이 많다.
한때는 서울 광화문 지하도 입구에서 풍란이나 춘란을 가마니로 쌓아놓고 헐값으로 팔기도 했다. 다 저 남쪽의 무인도 같은 곳 절벽에 핀 것들을 쓸어담아다가 여러 사람이 골고루 나눠가진 뒤에 골고루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험해서 자태 귀하고 향내 좋은 것을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향내 같은 것은 서둘러서 버린 것일까? 향내 나는 고귀한 사람을 보기 힘들다. 어쩌다 그런 사람을 보면 죄다 몰려가서 숨 막히게 한다."
"한때 우리나라 등산가들은 히말라야의 한 산꼭대기에 맨 처음 오르고서도 '정복'이라는 말을 애써 쓰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이기도 했다. 여러 등산가들은 누가 물었을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산은 정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산을 정복할 수 없지요. 다만 운 좋아 산이 허락해주어서 올랐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나 거창한 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 안의 크고 작은 산들에 갔었다는 이력을 자랑 삼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산 저 산을 차례로 '정복'해간다. 기껏 꼭대기까지 한번 올라간 것이 정복이다. 이력으로 삼기 위하여 꼭대기나 탐하는 사람들을 서양에서는 '피크 베거'(산정구걸꾼)라고 부른다.
--- 중 략 ---
그보다 도시에는 '피크 베거'가 더 많다.
"사람은 풍경을 바꾸고 그 풍경은 사람들을 달라지게 한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는 식물들보다 '고등'하지만, 그래서 식물들보다 불쌍하다 . --- 중 략 ---
비 많은 기간을 틈타 음지식물들은 성대를 구가한다. 숲 그늘에서는 여러 가지 버섯이 순식간에 피어 씨를 뿌리고 사그라진다. 그런 버섯과 같은 곰팡이류는 숲에 쌓인 낙엽이나 나무등걸 따위를 썩게 하여 완벽하게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것은 낙엽이나 줄기를 버린 나무들에게 그것들을 거름으로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한다.
숲을, 자연을 청소하며 제 목숨을 유지하고 번성하는 것이 곰팡이류이다. 그 많은 낙엽과 쓰러진 나무등걸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떨 것인지는 짐작하기가 쉽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 사는 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사회의 음지에는 독버섯뿐이다. 그것들을 썩게는 하지만, 썩는 범위를 양지 쪽으로까지 넓혀나가기는 하지만, 결코 썩어 없어지게 하지는 못한다. 아마 그것도 인간이 '고등'해서 그런가 보다. 장마철엔 온 도시가, 온 나라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썩기만 하고, 썩어 없어지지는 않는 것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월간미술 / 이건수 편집장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작가. 외국 사진 이론의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써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앵글을 개척한 사진가 강운구. 최근 그의 초기작업 《내설악 너와집》 복간 작업을 구상하고 있는 그를 여름빛 스러지는 광화문 작업실에서 만났다.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 속에서 삶의 진실을 펼쳐놓는 강운구를 만나 그의 근황과 육성을 들어본다.
이것은 인간의 손인가, 짐승의 발인가, 아니면 신의 손인가. 화면 밖으로 울컥 자신의 이력을 숨기지 못하고 내놓는 손. 막걸리를 휘저을 때 가장 멋져보일 것 같은 손. 거친 낫질에 수없이 베어졌을 굵은 손가락. 너와집처럼 딱정으로 남은 손등. 깊은 주름과 뭉툭한 손톱의 때. 보이지 않는 한 모금의 담배연기로 위로받는 그 사내의 지친 영혼. 하나의 손이 이렇게 많은 얘기를 담고 있었던가. 용대리 조씨라는 산골 농부의 이 손 사진은 하나의 손 이미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깊은 고요와 침묵 속에서.
모든 존재는 자신의 본질을 감추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고, 예술작품은 이 존재의 본질적 목소리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준다는 하이데거의‘탈은폐성’ 개념을 떠오르게 만드는 한 장의 흑백사진. 우리가 이 손에서 느끼는 울림은, 하이데거가 반 고흐의 <구두>에서 느낀 것 같은 이성적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그런 깊이의 동일한 비장함이 아닐까.
그것은 사진으로만 가능한 빛깔과 질감의 내용이며, 만약 그것을 그림으로 모사했을 때는 느끼지 못할 사진 고유의 풍크툼일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진의 정체성, 사물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렌즈의 치열한 시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사진계의 대표적 지성. 한국 작가주의 사진가 1세대인 강운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오직 세상의 모든 진실과 사물의 속뜻을 해석하기 위한 눈을 분주히 번뜩여왔다. 살롱사진 언저리에 머물던 사진풍토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정착시키면서 렌즈의 기록성을 통한 사진적 진실성,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해왔다. 다큐멘터리의 보편성을 주목하고 소재주의를 부정하는 강운구의 사진 속에는 그래서 현실의 정확한 기록이면서도 따뜻함과 애틋함의 그 무언가가 서려있다. 이와 같은 작품의 고유색을 강운구는 “서정적 리얼리즘”이라고 말한다.
“사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첫째가 사실적인 기록성, 둘째가 신속한 재현과 복제 가능성입니다. 매체로서의 가장 독특한 속성입니다. 회화에 있어서도 포토리얼리즘이니, 렌즈가 보는 눈을 이용한 작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광학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내용적 리얼리즘의 본질인 겁니다. 살고 있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문학이나 그림은 과거나 미래를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현재만 그릴 수 있습니다. 현재를 맹목적으로 기록하기보다는 시대적 내용과 핵심을 파악해야 합니다.”
“회화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번역하는 데에 비해 사진은 그것을 인용한다”는 존 버거의 말이나, ‘사진으로서의 예술’과 ‘예술로서의 사진’을 구별지은 발터 벤야민의 시도도 있듯이, 지금 우리의 이미지 제국에서는 회화와 사진의 정체성과 자리매김이 또 한 번 요구되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시대의 사진 테크놀러지는 과거의 사진 하면 떠오르는 은염사진의 틀을 벗어나 전통적인 사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영화라고도 할 수도 없는, 유령 같은 이미지의 망상들이 창조되고 출산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때 과연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사진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강운구는 이 화두를 붙잡고 그의 길을 걸어왔다. 다소 완고함으로 비칠 수도 있는 그의 이런 외곬 인생은 뒤집어 말하면 자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에 대한 짙은 확신과 기나긴 고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셀레늄으로 토닝한 젤라틴 실버프린트 1973
“저마다 뽐내는 사진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피어 있습니다. 세상이 갈래가 더 많아져서 복잡해진 것처럼 사진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진도 예술일까?’ 하고 아무도 수상쩍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사진을 수용하는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진가들조차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만의 고유(사진)의 홈페이지를 쓰기보다는 별 고민 없이 남(회화)의 홈페이지를 빌려다가 쓰면서도 그것이 자기 자신인 줄로 잘못 알고 있는 사진가들은 없을까요?”
사진을 둘러싼 이런 경박함과 트랜드성, 비본질적인 요소를 벗어버리고 강운구는 사진 고유의 매체적·내용적 특성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인화지 위에 픽스된 것만이 사진입니까. 사진은 프린트 영상의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입니다. 사진만의 리얼리티·힘·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장르의 벽이 허물어진 지금, 추상성의 회화와 사실성의 사진이라는 편을 가르고 남의 영역을 더 크게 보면서 서로 끌어쓰는 행위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본질은 기초적인 사진의 효용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의 매체를 가지고 추상적인 회화를 하는 것 같은 작업을 통해 사진작가들이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미술이 시작하려다 멈춘 것입니다. 때문에 그간 사진의 영역은 넓어졌으나 깊이는 얕아졌습니다. 사진이 아닌 예술로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추상적인 요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본질적 주류가 건재하고 지류가 많아야 하는데 곁가지만 늘어난 겁니다.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에게 만연해 있는 만드는 사진의 경향들, 그런 행위는 넓은 의미의 예술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사진의 진실성
강운구는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는 우리의 황폐화된 국면들을 기록해왔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고발적인 외침이라기보다는 서정미가 가득한 조용한 속삭임들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때문에 소설가 조세희는 “산소가 없었던 시기, 누구보다도 단란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켜낸 아름다운 영혼의 예술가”라고 헌사하기까지 했다.
강운구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월간지 《샘이 깊은 물》의 <이 마을 이 식구>(84~95년)라는 우리나라 잡지사상 가장 길었던 연재물에서일 것이다.
이 연재에서 그는 자신의 글과 사진을 통해 농촌의 삶을 기록하는 포토저널리즘의 전형을 이룩했다. 이후 그의 저널리즘적 작가성과 프로의식은 그의 작업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사진사적·출판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대형 사진집 《경주 남산》의 경우, 작업을 점검하다가 1년 동안의 촬영이 “돌부처와 정면대결을 시도한 치기로 가득한, 힘이 잔뜩 들어간 사진”임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폐기, 다시 4년 동안 새로 작업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수분리〉 셀레늄으로 토닝한 젤라틴 실버프린트 1973
우연 또는 필연의 ‘결정적 순간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강운구 작업의 실체를 읽어내기 위한 핵심적 텍스트는 《우연 또는 필연》일 것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산업사회화하는 농촌 풍경을 기록한 이 작업은 우리 민족의 삶의 원형으로서 농촌이 지닌 본래적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다.
새재의 어느 초가와 그 집 앞에 선 무기력한 가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사진집은 수분리의 일하기 싫어 자빠진 소와 이 모습을 보고 난감해하는 농촌 부부의 에피소드를 비롯, 70년대 영화배우 찰스 브론슨의 패널사진을 팔고 있는 ‘찬손부르튼 손’의 코믹한 미소의 일치 등, 사라져갔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이 담겨 있다.
황석영의 《객지》, 신경림의 《농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사진적 재창조로 평가받는 이 사진집은 그 탁월한 문학성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마지막 <연탄배달부> 시퀀스는 작가와 피사체 간의 관계의 우연적이고 또는 필연적일 수 있는 현실과 재현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1973년 서울의 한 골목길에서 검은 연탄재, 잘려나간 검은 손, 하얀 담배연기에 가려지는 그 남자의 검은 얼굴,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 위로 휘날리며 내리고 있는 흰눈의 대비를 통해 강운구는 뜨거운 몸짓으로 보통 사람들의 생활·노동·진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1994년에서 98년까지의 작업을 결산한 《모든 앙금》은 70년대에서 80년대 이후 방치된 농어촌의 폐가가 중심이다. 삶의 한 구석에 버려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들의 시신이 자아내는 ‘어려운 풍경’들이 역설적으로 눈길을 끈다.
“시간의 앙금이 쌓여진 먼 훗날에는 텔레비전들이 이 시대의 고인돌이 될 것이다.”고 말하는 강운구는 이 땅 이 시대 사람들의 인류학적인 기념비를 우화적으로 남기고 있다. 어렵고 쉬운 풍경의 반어법 또한 우리 시대의 사회적·정신적 상황의 상징이다. 우리 것이 질식당해버린 현실 속에서 과연 현실의 기록인 사진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물어보고 있다. 그래서 이 사진집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알렉산더 대왕>의 수천년을 초월하는 라스트 신을 연상시키듯 물음표를 던져주고 끝을 맺는다.
한국사진의 자생성
강운구하면 동시에 거론해야 할 작가가 그의 영원한 도반(道伴) 주명덕이다. 이들은 이론무장세대로서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인문학적 취향의 다각적 앵글을 시도했던 작가들이다.
“주명덕이 감성과 직관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나는 이성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일종의 주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셀레늄으로 토닝한 젤라틴 실버프린트 1976
그러나 주정적인 주명덕의 사진에서 차가운 느낌이 , 주지적인 강운구의 사진에서 뜨거운 느낌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존재를 향해 넓게보다는 깊게 삼투해 들어가려는 강운구의 애틋한 눈과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명덕은 시야에 처음 들어오는 신선한 이미지, 언뜻 보이는 가시적 풍경의 영역을 포획한다. 한번 보고 전체를 카메라로 훑는다. 때문에 프레임 전체로부터 요소로, 바깥으로부터 가운데로 시선을 이동시키는 사진이 많다. 특히 최근 주명덕의 검은 풍경 사진들을 보면 그 작은 꽃들과 이파리들 사이의 어둠 속으로 우리의 시선이 빨려들어간다.
즉 우리가 그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사진이다. 반면에 강운구의 사진은 사진 내부의 요소 인자들의 주종관계가 하나의 시와 내러티브를 엮고 있으며 이들의 이야기가 화면 밖으로 흘러나가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운구는 한 곳을 향해 심플하게 집중사격을 한다. 포획된 그 부분은 전체의 단순한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은 가운데 요소들에서 화면 밖의 전체로 옮겨지게 된다. 바꿔말해 주명덕의 사진이 연역적이라면 강운구의 사진은 귀납적이라고 해야 할까.
주명덕이 존재의 공간성을 추구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작가라면, 강운구는 세계의 변화과정, 즉 시간성을 추구하는 점오돈수(漸悟頓修)의 작가일 수도 있겠다. 과거 우리의 사진사는 서구의 이론에 곁눈질하고 그것을 의식하고 번안하는 역사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진사와 한국사진작가론이 속속 등장하는 사진계를 강운구는 주시하고 있다.
“서양작가나 서양사진사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사진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전체의 문제로서 총체적인 사진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옛 한국인이 사진 찍혔다고, 외국사람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우리의 얼굴을 찍었다고 그것이 한국사진사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수용당한 역사이지 주체적인 사진의 역사가 아닙니다. 주체적으로 사진을 찍고 다루게 된 것부터 진정한 사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사진계의 첫 한글세대로서 강운구는 그의 독자적인 시선으로 잊혀진 우리의 구수한 감성, 후기 산업사회에서 소멸되어가는 우리의 참 정서를 되살려왔다. 결국 강운구로부터 외국사진 방법론에 주눅들지 않는 독립적인 사진이론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때 한국화의 자생성 문제가 회자되었듯이 외국사진이론의 우산을 벗고 우리 고유의 예술언어를 획득한, 한국사진의 자생성을 이룩한 작가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버려진 집들 Ⅱ, 금산군 부리면〉 셀레늄으로 토닝한 젤라틴 실버프린트 1994
“자기가 사는 곳의 체질과 무관한 사진은 정체성을 갖춘 작품이 못 됩니다. 작가는 자기가 사는 시대와 지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국적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중요합니다. 국제화란 말은 국제적 평준화를 의미할 뿐입니다. 사람·지역·온도·문화가 다 다릅니다.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는 국제성은 폭력이며 허구입니다. 그것은 위험한 논리입니다. 여기 살면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할 수 있는 사진들을 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인류역사상 과거 30년이 빠르게 바뀌고 변질된 나라는 없을 겁니다. 30년 전의 현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도덕적·문화적 혼란으로 가득 차 있어요. 과정이 너무 짧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농경사회의 마지막까지 따라가 보자는 것이 나의 의도입니다. 우리 문화 예절의 모든 전통적인 것은 농경적인 것에서 파생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요즘 강운구는 지난 70년대 중반 사람과 집과 마을의 관계를 고찰해본 최초의 사진집 《내설악 너와집》을 3부작 한 권으로 묶어서 복간하기 위해 분주하다. 또한 《삼국유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서, 천년 전 시간의 질감으로 광선의 때를 맞추느라 노력했던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고대적 시간의 돌 부처들이 반사하는 빛의 대서사시 《경주 남산》에 함께 이어지는 <신라 왕릉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그의 심안(心眼)에 비친 우리 나라 원형의 풍경을 기대해본다.
“모든 표현수단 중에서 사진만이 특정적이고 일시적인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매체적 자부심을 믿는 강운구. 그에 의해 벗겨질 천년의 앙금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감동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천년 전의 사물들에게 속삭일 것이다.
“너는 죽어도 사진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너는 죽은 과거 속에 포착되지만,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또다른 천년의 시간 속에 열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