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간 곳은 청령포입니다.
개인적으로 단종의 무덤인 장릉도 좀 둘러보고 싶었습니다만,
워낙 뙤약볕이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니기에 무리라는 덕이의 말에 승복할 수 밖에 없었죠.
대신 영월시내로 오다가 보인 청령포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들렀던 곳인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좋았습니다.

청령포(浦)는...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소나무 숲입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죠.
조선 왕조의
6대 왕인 단종(宗. 재위 1452∼1455)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노산군으로 강등된 후 유배되었던 곳입니다.
1457년(세조 3년) 6월에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은 그해 여름 서강이 범람해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같은 해 8월 강 건너편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고
역시 같은 해 10월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죠.
비록 짧은 시절 머물던 곳이지만 단종의 숨결이 소나무 숲과 함께 쉼쉬는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속에 보이는 소나무 숲이 청령포입니다.
청령포에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합니다. 배에 오르는 시간은 아주 짧죠.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막혀있고 다른 한 면은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직접 가보시면 마치 육지속의 섬처럼 유배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청령포의 주차비는 시간과 관계없이 천원이고,
배삯을 포함해 입장료는 어른이 1천 3백 원, 청소년이 1천 원, 어린이가 7백 원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령포 건너편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곳에는 소나무 하나와 비석이 서 있습니다.
비석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적혀있죠.
「이 숲은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의 숲'으로 선정되어
우수상을 수상한 숲입니다. 2004년 11월 11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령포로 가는 배입니다. 사람만 탈 수 있죠. 배를 타는 시간은 정말 짧습니다.
3분이 될까 말까 하는...배를 탔다고 하기에는 좀 어이없는 시간이죠.

얼마전까지만 해도 강의 양쪽에 줄을 이어놓고 그 줄을 끌어당겨 움직이는 '줄배'였는데,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속력이 빠른 동력선으로 바꾸었다고 하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령포를 둘러보고 나오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숲을 둘러보고 나오는데도 숲에서 선착장까지의 퇴약볕에 금새 지친듯하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령포 소나무 숲의 단면들을 담아봤습니다.
아직 사진을 찍는 실력이 형편없지만, 숲은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군요.
전체적인 모습을 담자니 너무 헐렁해 보이고...
디테일하게 담자니 또 너무 정신없어 보이고...
사진속에 담지 못한 울창한 소나무들의 모습이 갑자기 그립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곳이 바로 비운의 임금 단종이 머물렀던 '어가' 입니다.
원래 단종이 머물렀던 어가는 오래전에 홍수로 떠내려가고
지금 있는 어가는 2000년 4월 지어진 것입니다.
나름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된 것이라고 하는데
 어가의 위치나 내부구성 그리고 주거형태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중이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어소 앞에 있는 청령포 안내도입니다. 안내도의 있는 곳을 돌아다는데....
소나무 숲에서 마음을 비워내며 천천히 사색을 하면서 걸어다니면 2시간 정도?
하지만, 좌표 찍듯이 마구 돌아다니고 사진으로만 담으면 30분 정도라고 할 수 있죠.

안내판의 뒷면에는 '단종어가낙성고유축문'이 적혀있습니다.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경진년 2월 30일 영월군수 김태수 감히 고하나이다.
단종대왕이시여
나라의 운이 크게 돌아와 영월의 상서로운 복이 오도다.
신위를 봉안하여 지성으로 예를 행합니다.
대왕께서 돌아가신 후 어가를 돌보지 못하다가
군민의 총의를 모아 금일에야 낙성하게 되었으니
슬픈 마음 이길 길 없고 신민된 충절 부족함을 진실로 뉘우칩니다.
4천만 국민 모두가 대왕의 외로운 혼을 슬퍼하고 슬퍼합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 금할 길 없습니다.
비록 하늘 저편에 계시나 뭇 별들이 숭앙하고 있습니다.
어가를 복원함이 너무나 늦은 느낌이 있으나
이제 청령포 옛 어가에 다시는 지난 날과 같이 어지러움이 없을 것이니
평안하게 강림하여 백성들의 추암함을 받으소서.
엎드려 비옵건데
존경이시여 작은 정성이지만 흠향하시고
더욱 우리를 비호하여 주시고 영월을 평안케 하여 주소서
이에 감히 고유드립니다"

좌측에는 한문으로 축문이 씌여있고 그 옆에 있는 한글 해석문입니다.
역시 축문은 아직도 한글로 보면 어울리지 않는 듯 하네요.
언젠가 읽은 책에서 프랑스의 마르크 오랑주 교수가
'한국인들이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잃어버릴 것이라'
고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가 앞에서 바라본 송림입다.
송림 한 가운데 벤치에는 중년의 부부가 바람과 함께 한참 담소를 나누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덕이와 민경이는 벌써 지친 표정입니다.
민경이보다는 엄마가 더 지친듯한....-_-;;;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경이는 이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이 곳의 의미를 알려면 아직 한참 더 커야겠지요.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재도 벤치에 앉아 기념사진을 한창 찍었습니다.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 어가의 한쪽 측면입니다.
사진속에 보이는 것은 사랑채쪽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 어가를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입니다만....
옛것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영 보기 불편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의 유배시절 그의 식솔들과 궁녀들이 묵었던 것으로 알려진 사랑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곳이 단종이 머물렀던 본청입니다.
관광객이 없는 본청만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두 분이 자리를 비켜주시질 않더군요.
본청에 앉아계신 여자분은 관광가이드시더군요.
단체 관광객들에게 청령포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는 분 같았습니다.
왠지 본청에 떡하니 앉아계신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끼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 어가 본청앞에 있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입니다.
비석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 곳은 1457년 6월 22일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대왕께서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셨 계셨던 곳으로 당시 이곳에 단종대왕 거처인 어소가 있었으나 소실되고
영조 39년(1763년)에 이 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비의 총 높이는 162cm으로서 1단의 화강석 기단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비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라고 음각되었으며
후면에는 '세황명숭정 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 채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로 음각되어
전면, 측면 각 1칸씩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종어소 앞에 있는 와송(?)입니다. 와송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소나무 가지가 가로로 자라는 것을 쇠와 나무로 지지대 등을 세워 뒀더군요.
단종이 어소에 머물던 그 오래전에도 이 소나무가 있었던지는 모르겠습니다.

청령포와 단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을 참조하세요.

이제 이 청령포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오래된 소나무를 한번 보시지요. 다음 포스트에서^^
,